아들만 있는 여자 후배가 전화를 해서 딸아이가 생겼다고 자랑한다. 그 나이에 웬 딸? 놀라 늦둥이 생겼냐고 물어보니 초등학교 5학년, 열두 살, 이름이 '노을'이라고 했다. 한 달에 두 번 보호시설에 있는 노을이를 만나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데 딸이 그렇게 좋은 줄 몰랐다고 까르르 웃는다.
이름이 노을이어서 하루에 한 번은 꼭 딸아이 생각을 한다고 했다. 이제 자기를 '노을이 엄마'로 불러달란다. 노을이가 울산 고래박물관에 가는데 같이 가자 했다며, 고래 보러 가자 했다며 딸 자랑을 한다. 후배의 행복이 쏴하게 전해져 함께 즐거워진다. 그 행복에 공감하면서 언제나 소녀 같은 후배지만 이젠 아름답게 늙어갈 준비를 하는 것 같아 좋다.
후배는 아들에게 헌신적인 어머니였다. 남이 모두 부러워하는 아들로 키워 그것만으로 어머니의 자리가 행복할 것인데 딸이 생겼다고 즐거워하는 것은 후배도 여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젊어서는 아들이 좋고 나이가 들어서는 딸이 좋다는 이야기를 집안 어른들에게서 자주 들었다.
후배의 자랑에 나도 딸 하나를 더 키워야겠다, 어린 천사들을 후원해야겠다고 생각을 가졌는데 아직 실천해보지 못했다. 후배의 전화에 용기를 내야겠다. 내게 만약 어린 딸이 생긴다면 예명을 '바다'로 지어주고 후배에게 전화 걸어 나를 '바다 아빠'로 불러 달라 자랑하고 싶다.
정일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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