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우리나라의 국가 신용등급을 A2에서 A1으로 상향하던 지난 14일. 이날 국내 10개 금융기관도 등급이 함께 올랐는데, 유독 산업은행에는 향후 전망에 ‘부정적’이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무디스는 산은의 ‘민영화 리스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주사 체제 전환 6개월로 접어든 산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겉으로는 민영화를 얘기하지만, 일하는 내용은 여전히 ‘정부 은행’이란 얘기다. 당국은 “내년 민영화에 착수하겠다”고 밝히지만, 산은 안팎에선 “도대체 뭘 준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많다.
구조조정엔 종횡무진
지난 6개월간 산은은 ‘정책금융’을 통한 기업 구조조정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해결했으며, 이 과정에서 대우건설과 금호생명을 인수했다. 또 GM대우, 쌍용자동차, 대우자동차판매 등의 위기에도 적극 개입했다. 이미 수십년간 담당한 ‘전공’분야에서는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문제는 이런 활약이 민영화에 독(毒)이 될 수 있다는 것. 이들 한계기업이 제대로 회생하면 좋은 투자가 되겠지만, 행여 회복이 장기화하면 모두 산은의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산은 관계자도 “(대규모 구조조정 개입이) 자산건전성에는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성과 더딘 체질 개선
전문가들은 산은 민영화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체질 변화를 꼽는다. ▦수십년간 국책은행으로 지내면서 생겨난 ‘관(官) 마인드’와 문화 ▦정부에 의존해 온 자금구조의 ‘민간화’가 절실하다는 얘기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시장에서 탐낼 물건이 되려면 굳어진 몸(재무구조)을 최대한 빨리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보증을 배경으로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민간의 5배가 넘는 500%의 예대율(예금대비 대출 비율)에도 불구하고 주식과 회사채 투자에 자유로운 기형적인 상황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산은도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수신기반 확대를 모색하고 있으나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예금모집인 활용 방안이 당국의 불허로 좌절된데다가, 올해 초 추진했던 태국 시암씨티 은행 인수가 무산되면서 인수ㆍ합병(M&A)을 통한 활로도 찾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방안이 나오고 있으나, 정부의 부정적인 시각이 부담이다. 정부 관계자는 “파는 게 민영화인데, 되려 뭔가 사들인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산은 내부에서는 증권(대우증권), 보험(금호생명)에 이어 카드 부문도 보강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이 역시 정부는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다.
이와 관련, 무디스는 지난해 내놓은 보고서에서 “민영화 이후 자금조달력과 자산건전성이 시중은행 수준에 이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는 한국 금융시장 전체에도 위험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손쉬운 민영화를 위해서는 전체 대출의 65%에 달하는 대기업 여신을 줄여야 하는데 정부 영향력이 유지되는 동안은 사실상 불가능한데, 정부 지원이 끊기면 산은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민영화 청사진이 없다
민영화 이후 장기 사업모델이 불확실한 것도 문제다. 민유성 산은지주 회장은 정책금융 분야에서 쌓은 경험을 살려 ‘기업금융+투자은행’이 결합한 ‘CIB’ 모델을 제시하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실현 가능성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특히 겸업화를 제한하는 이른 바 ‘볼커 룰’과의 상충 가능성에 많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 일각에서조차 “기업금융은 잘 했지만 산은이 언제 제대로 된 투자은행(IB) 업무를 한 적 있느냐”고 말할 정도다.
금융연구원 김동환 연구위원은 “민영화 선언 6개월이 지났지만 가시적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며 “예측이 어려운 민영화 시점의 시장상황에 대비하려면 하루빨리 새 사업모델을 정하고 철저한 준비에 착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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