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2차 수사를 놓고 고심해오던 검찰이 속도조절에 나섰다. 검찰은 수사유보를 공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6월2일 지방선거까지는 휴전에 들어간 모습이다.
검찰의 입장선회는 21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공안부장검사회에 참석한 김준규 총장의 발언으로 확인됐다. 김 총장은 "수사가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도 "선거와 관련해서 진행되는 비리수사는 약간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의 (수사)결과가 정치적인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선거에 임박한 수사의 원칙인 것 같다. 이를 마음에 새겨달라"고 주문했다. 나아가 검찰의 법 집행이 "선거에서 나타나는 국민의 뜻과 심판이 최우선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조금은 난해한 김 총장의 발언은 결국 한 전 총리 수사를 선거가 끝날 때까지 유보하라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수사강행 의지를 강조해온 검찰이 수사를 유보하기까지는 많은 진통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한 전 총리의 뇌물 의혹사건 1심 무죄 선고 하루 전날 별건(別件)수사 논란까지 무릅쓰고 또 다른 의혹사건 수사를 공표했다. 한나라당까지 나서 별건수사를 비판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정치권 요구대로 수사를 중단하면 '정치 검찰'을 자인하는 것이란 논리가 비등했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주부터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대검과 청와대 사정라인이 의견충돌을 빚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청와대 사정라인에선 한 전 총리에 대한 무죄 판결이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주는 상황에서, 2차 수사가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수사를 강행한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두 기관 사이에 긴장감이 조성됐고 '충돌했다'는 말까지 전해졌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중간에 낀 법무부도 이 사안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해 검찰로선 아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버티던 대검은 결국 주말을 고비로'지방선거까지 수사유보' 방침으로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 검찰로선 수사 강행을 지지하는 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무리하게 수사를 강행했다가 선거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검찰이 져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전 총리 측 금융계좌 압수수색 영장이 잇따라 기각된 것도 영향을 주었다는 분석이다. 당초 예상한 4월말 수사종결이 불가능해지면서, 수사가 계속 진행될 경우 정치적 부담이 큰 후보등록기간(5월13일~14일)이나 선거운동 기간과 겹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수사유보가 결과적으로 묘책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과거 사례에 비춰봐도, 지방선거 이후 수사재개가 수사유보 결정보다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 검찰 심판론이 선거이슈로 제기된 마당에 만일 한 전 총리가 당선될 경우, 수사 재개는 또 다른 정치적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다. 반대로 낙선할 경우 '두 번 죽이기'란 동정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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