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한국시간) 89세의 나이로 별세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올림픽을 세계 최대의 스포츠 행사로 끌어올린 공적과 지나친 상업화와 독선적인 운영으로 'IOC 마피아'를 양성했다는 비난을 동시에 받은 인물이다.
1920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출생한 사마란치는 초대 러시아 대사를 거쳐 1980년 제7대 IOC 위원장으로 선출된 뒤 2001년 현 자크 로게 위원장에게 대권을 넘겨 줄 때까지 21년간 IOC를 장기집권하면서 올림픽의 틀을 바꿔 놓았다.
파산 위기에 처해 있던 올림픽을 흑자로 전환시킨 주인공이 사마란치 전 위원장이다. 첨예한 냉전 시대에 정치적인 이유로 '반쪽 올림픽'으로 치부됐던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흥행 성공을 이끌어 냈고,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의 산파역을 해냈다. 사마란치 전 위원장의 활약으로 올림픽은 '되는 장사'로 각인이 됐고 각국의 유치 신청이 봇물을 이루며 올림픽의 위상은 한 단계 올라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프로스포츠에 대한 올림픽의 문호 개방도 사마란치 전 위원장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마란치 전 위원장의 고향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92년 올림픽에 마이클 조던 등 미프로농구(NBA) 스타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프로 야구 선수들의 출전이 허용됐다.
사마란치는 특히 IOC 위원장 재임 시절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결정은 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사마란치 전 위원장의 목소리를 통해 터져 나왔다. 94년 파리 IOC 총회에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정식 종목을 결정할 때 태권도를 직권 상정한 인물도 사마란치 전 위원장이었다.
남북 평화 정착을 위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북 동시 입장을 주선하기도 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 유치 경쟁 때도 후앙 아벨란제 국제축구연맹회장(FIFA)과 공동개최를 후원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에게 영광의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99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IOC위원들이 뇌물을 받았다는 스캔들에 휘말리며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기도 했다. 사마란치 전 위원장은 IOC 중계권료 협상과 스폰서십 유치 등 IOC 재정을 윤택하게 만드는데 공을 세운 김운용 전 부위원장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2001년 후임 위원장을 뽑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로게 위원장의 손을 들어줬고 명예위원장으로 추대됐다.
로게 위원장은 "우리는 위대한 멘토이자 친구를 잃었다"며 "그는 특출한 비전과 재능으로 올림픽 운동을 확산시키며 현대올림픽을 만들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김정민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