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준희 칼럼] 문제는 다시 언론이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준희 칼럼] 문제는 다시 언론이다

입력
2010.04.21 12:18
0 0

천안함 사고발생 꼭 한 달이다. 그 한 달 동안 매일 같은 질문을 받는다. "기자니까 알 것 아닙니까? 진짜 원인이 뭡니까?" 뭔가 다른 진실이 있기를 바라는 삐딱한 시각의 호사가들뿐만 아니다. 진심으로 국가사회를 걱정하는 차원에서 묻는 최고 수준의 지식인들도 적지 않다.

이 질문에는 전제가 깔려 있다. 우선 정부와 군이 특정 목적을 위해 뭔가를 은폐ㆍ왜곡하려 들 것이라는 의심이고, 둘째는 언론이 여전히 통제되든지 정부와 이해를 공유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모두 틀렸을 뿐만 아니라 절대 성립할 수 없는 전제다.

언론은 뭔가 알고 있다?

상식선에서 정황들을 보자. 사건 초기 청와대와 군은 분명 시각 차이를 보였다. 군은 체질상 당연히 북한에 심증을 두었고, 청와대는 군의 인식에 우려를 표명했다. 북한문제와 관련해 국제환경에 긍정적 전환이 모색되는 시점도 난감했을 것이고, 감당키 힘들 국민적 파장에다, 딱히 효과적 대응방안도 마땅치 않다는 현실적 이유들이 고려됐을 터이다.

이런 상황에서 MB정부는 적절한 선택을 한 것 같다. 조사에 민간을 참여시키고 해외에도 조사를 개방한 게 그것이다. 군의 지나친 기밀주의에도 경고사인을 보냈다. 아직은 북의 소행으로 단정할 수 없지만, 아무튼 국제적 인증을 통해 조사의 객관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야 추후 국제공조도 가능하리라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물론 원인이 영구미제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정치적 목적으로 범인을 몰아간다고? 지방선거 유ㆍ불리 정도의 정치적 득실과, 북의 소행으로 밝혀질 경우 안게 될 국가적ㆍ정권적 차원의 부담을 비교해보라. 설득력 약한 추론이다.

언론이 정부 통제하에 있다는 전제도 마찬가지다. 학계의 연구결과들을 보라. 보도에 부담을 주는 요인에서 정부는 점차 미미한 존재가 돼가고 있다. 무엇보다 숱한 매체가 온갖 의혹과 가설을 제기해대고, 음모론까지 기사화하는 마당에 정부 통제시스템을 상상하는 것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통제는 아니더라도 이해는 공유하지 않겠느냐는 의심은 그나마 합리적이다. 일부 보수언론들을 염두에 둔 의심이겠지만 이 역시 정부 내에서도 방향의 혼선이 있고 더욱이 조사가 개방된 상태에선 별 의미가 없다. 만약 이 때문에 사실의 은폐ㆍ왜곡이 있다면 이 언론의 백가쟁명시대에, 더욱이 어떻게든 이 정부와 보수층의 잘못을 드러내려는 그 많은 진보매체들 사이에서 무사할 턱이 없다.

그렇더라도 이런 인식이 가능한 조건은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언론의 신뢰 추락이 만들어낸 환경인 것이다. 이번에도 초반 대부분의 언론이 중심을 잃고 허둥댔다. 분야별 재야고수를 자처하는 이들의 인터넷 댓글과 블로그 글들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그대로 지면에 옮겨 담기에 급급했던 것도 사실이다.

언론이 차분하게 주장들을 분석하고 합리적 판단의 근거들을 제시함으로써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방에서 제기된 의혹들을 그냥 전달하는 수준에 그침으로써 무책임한 의혹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학문적 용어로 하자면 언론이 의제설정 기능을 상실하고 도리어 시중의 잡설에 휘둘리는 역(逆)의제설정 상황에 놓인 것이다.

언론 스스로 자초한 불신

변명거리는 여러 가지다. 제한된 인력, 전문지식의 부족, 시간의 제약, 과당경쟁 등이다. 그러나 총체적으로는 역시 언론의 책임감과 자질 부족이다. 언론마저 이념이나 신념, 특정사고의 프레임에 갇힘으로써 객관성과 공정성, 상식적 판단에서 멀어진 것이다. 그 동안의 상황 변화와 진전에도 불구하고 초반에 만들어진 인식의 틀 그대로인 보도와 논평들이 한 달이 된 지금도 여전하다.

언론이 신뢰를 잃고, 국가사회를 견인하는 힘이 약해졌지만 국가적 재난을 당할 때마다 새삼 아쉬운 것은 역시 정통언론의 역할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다시 언론일 수밖에 없다. 물론 필자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