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확인은 쉽지 않았다. “거북이처럼 생긴 시골마을의 작은 돌 하나가 자그마치 6,000여 ㎡ 논밭의 주인 노릇을 하면서 주민들을 소작인으로 부리고 있다”는 뜬구름같은 얘기를 믿기란 어려웠다.
주민들을 먹여살리고, 수백 년 동안 마을 수호신으로 숭배된 돌거북은 산 높고 물 깊은 경북 상주시 외서면 연봉리 한켠에 있었다.
17일 오전 10시께, 묻고 물어 도착한 연봉리에서는 때마침 ‘돌거북 마을제사’가 한창이었다. 새끼로 금줄이 쳐진 돌거북 제당에는 김동환(57) 이장 등 주민 10여 명이 돌거북에게 큰절을 올리고 있었다. 야외에 마련된 젯상에는 1만원권 지폐 여러장이 꼽힌 돼지머리와 상주 특산물인 곶감, 배, 사과, 떡, 묵나물이 등이 푸짐하게 차려져있었다. 50분 남짓 제사가 끝날 때까지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분위기가 엄숙하기도 했지만 사담(私談)을 금지한 전통 때문이었다.
촛불이 꺼지고 제사가 끝나자 어느새 마을 사랑방으로 변했다. “아재, 한잔 하고 가여” 술과 음식을 권하는 소리로 떠들썩했다.
매년 설과 추석 때면 돌거북에게 제사를 올리지만 이날은 특별한 자리였다. 마을 어른인 이장이 최근 바뀌면서 돌거북에게 신고식을 한 것이다. 김 이장은 “수백년간 마을을 지켜온 돌거북에게 풍년과 건강을 기원했다”며 “소원을 빌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믿음이 내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120가구에 300여 명이 사는 이 마을에서 돌거북은 수호신이다. 호칭도 경상도말로 마을 수호신을 일컫는 ‘골매기’다. 옛부터 돌거북은 액운과 잡귀를 쫓고 안녕과 부귀를 비는 상징물로, 민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지만 이 마을에는 남다른 애환이 서려 있었다.
길이120㎝에 폭70㎝, 높이30㎝ 정도인 돌거북의 유래는 17,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돌거북은 이곳에서 1㎞쯤 떨어진 ‘역적등’ 정상마루에 있었다. 역적등은 연봉리와 마주한 ‘물건너마을’ 뒷산으로, 인조반정을 주도한 김자점(1588~1651)을 몰래 묻었다 묘가 파헤쳐지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조선 중ㆍ후기 세도가들이 터를 잡은 인근 ‘뒷마을’ 주민들이 상주읍내로 가려면 반드시 넘어야했다. 하지만 세도가들이 행세께나 한답시고 걸핏하면 행패를 부리자 참다못한 물건너 주민들이 액운을 쫓기 위해 역적등에 돌거북을 앉힌 것이다.
그후 소문을 들은 뒷마을 주민들이 발끈, 거북돌 앉은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는 등 거북돌을 둘러싼 지리한 공방이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뒷다리와 머리 부분이 조금 깨졌다. 1930년대 초 지금의 연봉리에 자리잡게 된 뒤 횡포를 일삼던 옆 마을 주민이 급사했다는 소문도 나돌고, 뒷마을의 횡포도 사그러들면서 돌거북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추앙받게 됐다.
마을에서 한평생을 산 김화석(80) 할아버지는 “돌거북에 신령한 기운이 있는 것으로 믿는 주민들은 이곳을 지날 때면 숨소리조차 내지 않을 정도로 조심한다”며 “의료환경이 형편없었던 일제시대 때는 몹쓸 병에 걸린 환자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인네들의 기도 행렬이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돌거북은 마을 주민 모두가 인정하는 땅부자이기도 하다. 100여 년 전 자식없이 세상을 뜬 부부가 생전에 모은 논과 밭 6,000여㎡를 모두 돌거북에게 상속한 것이다. 마을에서는 이 땅을 공동경작하다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하던 1912년 주민 25명의 명의로 등기했다. 매년 이 땅에서 거둔 쌀과 보리 등 곡식으로 돌거북에게 제사를 거르지 않고 있다.
일제의 토지수탈을 피해 명목상 땅을 취득하는 아이디어를 동원했던 주민들은 돌거북 관리와 재산 처분,제사 등의 내용을 담은 ‘돌거북 기록부’를 작성하기도 했다. 앞장이 떨어져나간 기록부에는 경신년인 1920년 정월 회의록부터 기록이 남아있다.
돌거북의 영향력은 연봉리 주민들의 관혼상제 등 생활 곳곳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거북돌에 금줄이 쳐지는 정월과 추석 명절엔 상주(喪主)가 마을에 들어올 수 없고, 상여도 지나가지 못한다. 돌거북 관리인은 이웃의 흉사를 볼 수 없었다.
상주시에 따르면 돌거북이 소유한 땅은 실거래가로 3억원에 이른다. 최근 쌀국수공장이 인근에 들어선데다 상주교도소와 노인병원 설립 계획이 구체화하면서 땅값은 계속 치솟고 있다. 김돌학, 안술이 등 일제때 이 토지 명의자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고, 다른 지역과 해외 등으로 뿔뿔이 흩어진 자손이 200여 명에 이르면서 “상속은 물건너갔다”는 게 주민들의 판단이다. 이때문에 주민들은 조만간 ‘돌거북 보존위원회’를 만들어 땅을 모두 원주인인 돌거북에게 다시 되돌려줄 방침이다.
주민 지명호(51)씨는 “누구도 돌거북이 땅주인이라는데 이견이 없다”며 “법적 절차를 밟아 돌거북 보존위원회가 상속인이 되거나, 특별조치법을 통해 상속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변호사와 상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주= 글ㆍ사진 김용태 기자 kr88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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