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일(66) 우리메디컬컨설팅 대표는 매주 하늘을 난다. 취미로 경비행기 조종을 시작한 지 올해로 11년. 비행 얘기만 나오면 그는 눈빛을 반짝였다. 19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비행기에 기댄 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얼마 전에 동료 의사, 레지던트들을 데려가 제 경비행기에 태워주며 좀 으스대봤죠, 멋지죠?”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하늘을 동경한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라고 한다. 경남 김해 출신인 그가 여섯 살 때 한국전쟁이 발발했는데 그 난리통에도 하늘을 날아 다니는 전투기가 그렇게 멋져 보이더라는 거였다. “비행기 소리만 들리면 마냥 신나 쫓아다녔어요.” 소년의 장래 소망은 당연히 ‘빨간 마후라’가 되는 거였고, 희망 대학 역시 공군사관학교였다. 하지만 5남매의 장남인 그는 의사가 되기를 바랐던 부모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 가톨릭대 의과대학에 진학한다. “공사에 진학한 고등학교 친구가 방학 때 말끔한 제복을 입고 나타나면 어찌나 마음이 싱숭생숭하던지…, 정말 한 번 입어보고 싶었어요.”
그는 1979년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병원 정형외과 전문의가 된다. 제복 대신 흰 가운을 입고, 콕핏이 아닌 소독약 냄새 진동하는 수술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그래도 미련은, 그 유년의 꿈은 살균되지도 표백되지도 않더라고 했다.
”1990년인가 어느 날, 초경량 비행기에 관한 신문기사가 났어요. 냉큼 안산 비행훈련장을 찾아갔더니 기본적인 안전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채 썰렁하더군요.”그리고 2000년 병원장을 맡아 의약분업사태 등으로 골머리를 앓던 참에 머리를 식힐 겸 다시 그곳을 찾아 갔고, 곧장 훈련 등록을 했다. 이후 매 주말마다 훈련수업에 개근했고, 2년 뒤 거금 6,500만원을 들여 2인승 호주기종 ‘자비루(JABIRU)’를 구입한다. “그 미끈한 녀석을 만난 뒤부터는 그렇게 좋아하던 골프도 생각이 안 나더군요.”
2001년 9월 두려움과 짜릿함이 교차했던 첫 단독비행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교관이 갑자기 비행기에서 내리더니 ‘잘 다녀오세요’라면서 그냥 가더군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죠.” 첫 단독비행은 절대 예고되는 법이 없다. 미리 알려주면 그 때부터 잠을 설치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긴장해서 실수하기 때문이란다. 그는 “교관이랑 함께 타다 막상 혼자 타니 가벼워서 더 잘 뜨던데요? 처음엔 두려웠지만 오히려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났어요. 이후에는 재미를 느껴 주로 혼자 탔죠”라며 웃었다.
지난 2월 병원에서 정년 퇴임했지만 김 대표의 일상은 더 바쁘다. 당장은 이달 30일부터 엿새간 안산비행훈련장에서 열리는 경기국제항공전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는 이 행사 조직위원이다. 그리고 ‘비행학교 설립’이라는 새로운 꿈을 실현하기 위한 준비도 조금씩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처럼 하늘을 동경하는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비행기 근처에 접근조차 못해 꿈을 포기하는 일은 없도록 하고 싶어서다. 먼저 교관 자격증 취득이 1단계 목표. 그러자면 요건인 200시간 이상 비행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는 “안전하고 성능 좋은 경비행기를 2대 정도 추가로 들여와 2~3년 안에는 꼭 비행학교를 세울 겁니다”라며 아이처럼 입을 앙다물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