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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엑스포/ 한국의 '엑스포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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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엑스포/ 한국의 '엑스포 인연'

입력
2010.04.21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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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박람회라 불리기도 하는 엑스포는 1851년 5월 영국 런던에서 처음 열렸다. 산업혁명을 통해 주축 세력으로 떠오른 신흥 부르주아지들은 19세기의 ‘낡은 것’을 확 바꾸겠다는 욕구로 가득했고 이를 엑스포라는 공간을 통해 풀어내려 했다. 참가국이 저마다 개성을 살린 건물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1878년부터이다. 에펠탑, 에스컬레이터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것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 1889년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 때였다.

우리나라는 1889년 파리, 1893년 시카고 박람회에 참가했었지만 관복, 도자기, 모시 등을 진열하는 수준에 그쳤고 본격 참가한 것은 1900년 파리 박람회다. 고종은 1893년 파리 외무부로부터 초청을 받은 뒤 흔쾌히 이를 수락했다. 전시관은 경복궁 근정전을 본 떠 만들었는데 화려한 색깔, 너른 기와 지붕, 하늘을 향해 치솟은 처마 끝 등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큰 관심을 끌었다고 박람회 공식 책자에 기록돼 있다. 당시 우리나라는 농산물 가공식품으로 대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야생작물과 의류에서 금메달을, 또 도자기와 자수 등에서 10개의 은메달과 5개의 동메달, 3개의 장려상을 땄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독립국가의 지위를 잃으며 엑스포에 참가할 수 없었던 우리나라는 1962년 미국 시애틀 박람회를 통해 엑스포에 무대에 다시 등장한다. 이후 87년 세계박람회기구(BIE)에 가입하고 93년 BIE 인정 박람회인 대전 엑스포를 열었다. 비록 BIE 등록 박람회 보다는 한 단계 낮은 수준이지만 개발도상국이 처음 개최한 공인 박람회였다는 점에서 의미는 컸다. 당시까지 엑스포는 미국, 프랑스, 영국, 일본, 벨기에, 호주, 캐나다, 스페인 등 8개 나라에서만 열렸다.

2012년 한국은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The Living Ocean and Coast)을 주제로 한 여수 엑스포를 통해 세계인들과 또 한 번 만난다. 조직위원회는 생산 유발 효과 12조3,000억 원, 부가가치 5조7,000억 원과 함께 7만9,000명의 고용 유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상하이=박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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