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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가끔 아플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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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가끔 아플 필요도 있다

입력
2010.04.21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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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안팎이 흉흉하다. 하루 밤새 수십 명의 젊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은 천안함 침몰에 이어 폴란드 대통령을 태운 비행기가 추락하여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중국에서는 지진이 일어나 수천 명이 졸지에 목숨을 잃었다.

특히나 나라를 위해 헌신한 꽃다운 젊은이들의 죽음은 비통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천안함 실종자 구조를 돕다가 돌아오던 길에 해난 사고로 희생된 금양호 선원들을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아프다. 천안함 사태에만 매달려 그들을 돌보는 데 소홀한 것이 야속하다.

연일 터지는 비보를 접하면서 우리 삶이 살얼음판처럼 허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딛고 있는 바닥이 언제 어떻게 무너져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게 우리의 삶이다. 그걸 모르고 아등바등 살고 있는 우리 모습이 오늘따라 무척이나 쓸쓸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몸살로 한 열흘 된통 앓고 난 후라 더 그런 생각이 드는 듯하다.

감기에 걸리면 사는 게 고행임을 새삼 깨닫는다. 콧물은 줄줄 흐르고 삭신은 쑤시는데 생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터로 나가야 한다.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하니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역설적인 말이지만, 가끔가다 감기에 걸릴 필요가 있다. 감기는 우리 삶을 잠시 뒤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감기란 우리 몸이 우리에게 보내는 위급 신호이다. 너무 무리하게 일을 하느라 혹사시킨 우리 몸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고 지르는 비명이다. 우리 몸이 쇠약해져 바이러스와 맞서 싸울 힘이 없으니 당장 쉬어야 한다고 알려주는 경고이다. 그런 면에서 감기는 정신 없이 앞으로 달려가는 우리의 행보에 제동을 걸어주는 고마운 손님이다.

몸이 아프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어제까지 중요했던 일도 급한 일도 별로 그래 보이지 않는다. 웬만한 약속쯤은 취소해 버리고 일찍 집에 들어간다. 쌩쌩할 때는 생각도 못하던 일이다. 치열한 전선에서 이탈해 길가에 앉아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장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왜 이렇듯 정신 없이 살아왔는지,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사라져도 세상은 끄떡없이 잘 돌아가겠구나 하는 사실 역시 씁쓸하지만 깨닫게 된다.

감기에 걸려 사지가 쑤시고 온 몸에 기운이 빠지면 비로소 세상일이 당연하지 않고 대단해 보인다. 하다못해 씩씩하게 걸어가는 사람이나 밝게 웃는 사람도 부러워 보인다. 그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참으로 소중한 것임을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다.

감기는 무엇보다 우리에게 약한 이들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쌩쌩하게 돌아다닐 때는 결코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몸이 아파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계단을 오르는 데에도 숨이 차 허덕이는 노약자나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얼마나 힘들까, 비로소 짐작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늘 자신의 상태에 비추어 다른 이들을 평가하기에, 건강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늦잠 자는 사람을, 식욕이 왕성한 사람이 소화불량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듯이, 자신의 처지와 다른 이들의 아픔을 알지 못한다.

감기는 바로 그런 우리를 온통 뒤흔들어 행복에서 불행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건강한 상태에서 병든 처지로 한 순간에 곤두박질칠 수 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를 조금은 겸손하게 만들어주고 이 봄의 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니 가끔가다 아플 필요도 있다.

김용민 연세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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