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 전국 석차 1% 안에 들어 연세대 불문과에 합격한 김기현 씨. 꿈 많던 새내기 여대생의 대학 생활은 한 학기로 끝나고 깊은 어둠의 터널로 들어가게 된다. 그 해 여름방학, 사고로 시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고난에 당당히 맞섰고 재활 훈련을 거쳐 현재 미국에 유학 중이다. 그녀가 쓴 재활 일기 <마음의 눈으로 행복을 만지다> 의 한 대목이 참으로 신선하다. 마음의>
시각장애인 ‘마음의 눈’
시인 롱펠로우의 생가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시각장애인 관람객을 위해 전시된 유물들과 집안 곳곳을 면장갑을 낀 손으로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특별한 배려를 제공했다고 한다. 시각장애인의 손은 곧 눈이라는 점을 인식한 박물관측이 배려를 해준 것인데, 비록 눈으로 볼 수 없어도 롱펠로우 조각상을 만져 보면서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려볼 수 있었고 가구와 물건들을 만져보면서 그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문화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고 소중한 경험을 쓰고 있다.
우리 사회에 도로 턱과 같이 눈에 보이는 장애물은 어느 정도 없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보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세상은 더 넓어졌다. 디지털 네트워크 환경 하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정보 격차는 더욱 커지게 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각이 막힌 그들이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것은 청각을 이용한 녹음도서와 촉각을 이용한 점자책인데, 에센스 영한사전을 점자책으로 만들면 107권 분량이 되어 서가를 꽉 메우게 되고 박경리의 소설 <토지> 전질을 점역하는 데는 꼬박 1년이 걸린다고 한다.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점자와 녹음도서를 제작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저작권법 조항은 이제 더 이상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려규정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럽게 되었다. 배려라는 것은 받는 사람 입장에서 받을 만할 때 귀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토지>
작년 9월 개정된 도서관법에 의하면 국립중앙도서관 장애인도서관 지원센터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독서 자료를 만들기 위해 출판자에게 디지털 파일로 납본을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제대로 시행된다면 자원봉사자들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점자책을 만들거나 낭독하여 녹음할 필요가 없이, 디지털 파일을 소리 또는 점자변환프로그램으로 돌려 불과 몇 시간 안에 촉각 또는 청각도서를 만들 수 있게 된다.
많은 출판사들이 국립중앙도서관의 요구에 응하고 있지만 아직도 상당수 출판사는 파일 유출을 우려하여 협조하기를 꺼리는 실정이다. 가사 일부 유출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이를 이유로 장애인차별금지법, 도서관법, 저작권법이 보장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정보 접근권을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은 장애인 주차장을 불법 사용하는 예가 있다고 장애인 주차면을 없애자는 것과 같다.
세계 지적재산권기구(WIPO)에 제출된 시각장애인 정보 접근권 관련 제안서는 시각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똑 같은 조건으로 완전하고도 효과적인 사회 참여를 할 수 있도록 그들이 접근할 수 있는 포맷으로 출판물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시각장애인들의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라고 제1조에 밝히고 있다.
“장애인은 인간이다”
피겨 요정 김연아 선수는 최근 찍은 공익 광고에서 이번 밴쿠버 올림픽에서 두 번 울었다고 한다. 자신이 우승했을 때와 장애인올림픽 컬링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이 은메달을 땄을 때라고 한다. 김 선수는 이 광고 수익금 전액을 장애인 단체에 기증해 다시 한번 감동을 주었다.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고 26일은 지적재산권의 날이다.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과 저작권이라는 상충되는 날 선 두 외침도 “장애인은 인간이다”라는 평범한 말 앞에 흐물흐물해져야 한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애학생지원센터 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