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암살 대상으로 삼은 탈북자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만이 아니다. 북한은 이미 1997년 김정일 위원장의 처조카인 이한영씨를 암살, 고위급 탈북자를 언제든지 살해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1961년 평양에서 태어난 이씨는 김 위원장의 전처 성혜림의 언니인 성혜랑의 아들로서 모스크바 유학생 1기로 선발돼 모스크바대를 나온 북한 엘리트였다. 82년 스위스 유학 도중 서방으로 탈출해 한국으로 망명해 온 이씨는 이후 KBS에 입사하고 가정도 꾸리면서 성공적으로 국내에 정착한 듯 했다. 하지만 이씨는 각종 매체를 통해 북한 체제를 비판하고 96년에는 김 위원장의 사생활을 폭로한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잠행 14년> 를 출간하면서 북한 정권의 표적이 됐다.
결국 이씨는 97년 2월15일 경기 성남시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2명의 괴한에게 피격돼 10일 뒤 숨졌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2월12일 황 전 비서가 망명한 지 3일 뒤였다.
당시 범인이 붙잡히지 않았으나 공안 당국은 북한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이 직파돼 이씨를 암살한 것으로 추정했다. 사회문화부는 당시 북한의 대남공작을 전담하던 곳으로 97년 8월 대외연락부로 개칭됐다.
이씨가 암살당한 데는 한국 정부의 관리 소홀도 한 몫 했다. 괴한의 의뢰를 받은 심부름센터 직원이 교도소 직원과 경찰관으로부터 이씨의 주소와 주민등록번호 등 신상정보를 빼내 넘긴 것으로 조사됐다. 대법원은 2008년 이씨의 부인이 “국가가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해 남편이 살해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가 60%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강지원 기자 styl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