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축포에 서로를 얼싸안고 승리의 함성을 목청껏 지른다. 우승 감격에 벅찬 이들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화재의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 주장 석진욱(34)은 온몸에 힘이 풀렸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죽을 힘을 다해 싸운 끝에 따낸 챔피언 자리였지만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제 끝이라는 안도감에 그대로 드러눕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지만 주장 석진욱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제 자리를 지키며 동료들과 함께 우승의 기쁨을 나눴다. 차라리 전쟁에 가까웠던 전투를 치른 석진욱을 20일 전화를 통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의 아름다운 투혼
그의 몸을 보면 안쓰럽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팔, 어깨, 무릎 등 곳곳에 수술 자국이 남아 있다. 어떻게 저 몸을 가지고 한 시즌을 무사히 치렀을까라는 안타까움이 앞섰다. 하지만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이 챔프전 후 귓속말로 "네가 최고의 주인공"이라고 말할 정도로 석진욱은 당당한 우승 주역이다.
석진욱에게 아픈 부위에 대해서 물었다. "양쪽 무릎을 다 수술했어요. 오른 무릎은 건염으로 힘줄이 끊어져서 수술했고, 뼛조각도 제거했기 때문에 점프할 때 통증이 와요. 왼 무릎은 십자인대 수술을 했고, 연골 파열로 찢어진 곳을 봉합했어요."
이 같은 수술과 부상으로 인해 석진욱은 무릎이 제대로 구부러지지 않는 증상을 보이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어깨 뒷근육 하나가 없어 쑥 들어가 있어요. 게다가 어깨 앞 근육이 파열됐는데 지난해 한 곳이 더 찢어져 은퇴를 고려하는 상황까지 갔어요"라고 덤덤하게 얘기했다.
성한 곳 없는 몸은 챔피언결정전 6차전까진 잘 버텼다. 하지만 결정적인 승부처인 7차전 4세트에서 이상이 생겼다. 종아리에 쥐가 난 것. 한쪽까진 괜찮았는데 점프를 하면서 나머지 다리에도 쥐가 나는 바람에 영락없이 교체돼야 했다. 침으로 양쪽 다리에 피를 빼고 마사지를 받은 후 상태가 양호해지면서 5세트에 다시 투입된 석진욱은 투혼을 발휘해 우승에 기여했다.
▲코트 안팎 '바른생활' 이미지 부담
한양대를 졸업하고 99년 삼성화재에 입단한 그는 줄곧 한 팀에서만 성실하게 뛰었다. 자신의 좌우명 '최선을 다하라'처럼 그는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며 묵묵히 '돌도사'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모든 우승이 기억에 남지만 올해가 특별하다. 정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우승에 실패했다면 평생 후회로 남았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바른생활 사나이'라는 인식 탓에 손해도 보곤 한다.
그는 "운동시간만은 제대로 하자고 동료들에게 공언한 게 있는 까닭에 정말 힘든 상황에서도 모두가 보고 있기 때문에 쉴 수가 없었다. 또 항상 다 잘해야 하는 이미지라 설령 실수라도 하면 불호령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코트 밖에서도 석진욱은 가끔 '바른생활'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그는 "친구들 만나서 욕도 하고 술도 마시는데 바른생활 사나이라는 팬들의 인식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성실하고 우직한 석진욱의 모습은 지도자상에도 어울린다. 하지만 그는 은퇴 후 지도자 입문에 대해 "아직 잘 모르겠다. 선수와 지도자는 확실히 다를 것"이라며 "지도자를 제외한 다른 길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김두용 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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