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살면서 창의력과 사고력, 인성을 중시하는 그 곳의 교육 현실을 블로그에 소개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주부 박성숙(46)씨. 최근 낸 <꼴찌도 행복한 교실> (21세기북스 발행) 출판 기념행사와 강연 등을 위해 일시 귀국한 그를 17일 만났다. 그는 경쟁의 무한궤도 위에 놓인 한국 교육의 출구로 독일 모델을 들며 "욕심을 조금씩만 버리면 모두가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꼴찌도>
박씨는 1998년 고등학교 물리교사였던 남편의 유학길에 가족과 함께 동행, 현재까지 독일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를 설명했다.
"학창시절 부모의 반대로 접었던 미술을 하고 싶어 2001년 독일인이 많이 다니는 이웃나라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히트 미대에 진학해 다녔는데, 어느 날 담당교수가 과제로 제출한 제 작품을 보더니 '아시아적이다'라며 밑바닥 점수를 주는 겁니다. 사물을 그대로 따라 그리기만 하는, 아시아 학생들의 창의력 부재를 꼬집는 혹평이었죠."
그 충격과 함께 그를 각성케 한 것은 그 곳의 체계적인 미술교육이었다. 유명 작품을 모방하고 변형시키는 기초부터 시작해 소설을 읽고 표현하거나 그림을 보고 분석하는 글을 쓰는 것까지, 그가 알던 미술교육과는 천양지차였던 것. "초중등 12년간 도화지에 그림만 그린 저로서는 따라가기가 매우 힘들었죠."
건강이 나빠져 2년 만에 자퇴한 박씨는 두 아이의 학부모로서도 한국과 너무 다른 독일 교육을 경험해야 했다. 그에겐 김나지움 11학년(고2), 초등학교 4학년인 두 아들이 있다. "이솝우화를 가르친 뒤 학교에서 낸 초등학교 시험문제가 4컷의 그림을 보고 우화를 만들라는 거였어요. 수학도 문제는 달랑 4갠데 답안지만 6장이에요. 10점짜리 문제라면 답이 틀려도 풀이과정이 맞을 경우 8점인데, 과정이 틀리고 답만 맞으면 2점을 받죠."
물론 성적표에 등수는 없었다. 학교 분위기도 사뭇 달라 성적에 대한 중압감은 찾기 힘들었고, 심지어 아비투어(수능시험)를 일주일 앞둔 수험생에게 학교측이 축제를 열어줄 정도.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거리로 나서며 타인과 함께 하는 공동체 교육, 히틀러를 비판하며 지식과 인간미를 함양하는 교육….
박씨는 책을 출간하기로 마음 먹고, 2008년 8월 '독일교육 이야기'라는 제목의 블로그를 개설해 독일 교육 관련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대학(성균관대 중문과) 때 교직과정을 이수하며 한때'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했던 이력도 그의 결심을 응원했을 것이다. 신문, 책을 뒤져가며 써 올린 그의 글에는 댓글이 수십 개씩 달렸고, 온라인 토론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학부모, 교사 등 118만여 명이 방문한 박씨의 블로그는 지난해 포털사이트 다음의 '뷰 블로거 대상'시사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독일의 교육은 대학이 평준화돼 명문대가 없고, 경쟁이 적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 박씨의 생각이다. 학벌에 대한 압박이 없어 대졸자가 20%에 불과하고, 고졸자도 직업을 구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박씨가 살고 있는 아헨시 시장도 고졸에 페인트공 출신이란다. "대학 입학을 위해 한국처럼 1점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고, 교사는 그만큼 재량을 발휘해 유연하게 교육할 수 있죠." 그렇다고 대학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박씨는 "지난해 영국 '더 타임스'가 발표한 세계대학평가에서 500위 안에 독일 대학이 41개로 영국에 이어 2위였다"며 "인재가 고르게 분포해 대학 수준이 고르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명문대는 없어져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제도를 바꿔도 명문대가 온존하는 이상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명문대란 목표가 있는 한 교육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학생을 쥐어짜게 될 겁니다."
박씨는 큰 아들이 다니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쿠벤 김나지움 교장이 들려준 얘기라며 이렇게 말했다. "주입식으로 교육하는 국가는 지적 수준이 높아요. 한국도 그렇죠. 그러나 지적 수준만큼 인격이 성숙하지 않아 인품과 도덕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정치인이 될 수 있어요. 위험한 정치인이 나오고, 부패하기 쉽다는 얘기죠. 독일도 세계 50위권 내 대학이 없어 교육개혁을 진행하고 있지만, 제2차세계대전의 경험을 통해 인간을 생각하지 않는 경쟁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한국만큼 치열한 교육경쟁이 벌어지진 않을 겁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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