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춤협회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가졌던 '2010 현대춤작가 12인전'(13~18일)은 현대적 음악의 향연장이었다. 동서고금의 갖가지 음악 장르가 무용 무대와 연대하면서 상승 효과를 일으켰다. 한국 전통음악마저도 현대음악의 일부로 들렸다. 그러나 현재 작곡되고 있는 '현대'음악은 현대인들이 멀리하는 음악이다.
그러나 지난 14일 오후 8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아르스노바2' 무대에서, 현대음악에 대한 이런 통념은 설 자리가 없었다. 개막 전 40여분 동안 관객들을 대상으로 상임 작곡가 진은숙(49)씨가 펼친 친절한 해설로 객석은 경계를 풀었다.
사찰 풍경을 연상케 하는 종소리가 극히 미세하게 흘러나왔다. 바이올린들은 연주 시늉만 하고 있는 듯했다. 눈빛 하나로 서울시향 단원들을 장악한 독일 지휘자 롤란트 클루티히의 움직임은 연주보다 더 섬세했다. 참다못한 객석 한쪽에서는 "이것도 연주야?"라며 들릴 듯 말 듯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러다 모든 악기가 갑자기 순간적으로 폭발했다.
요하네스 쇨호른의 '육(6)-일(1)/물'은 음악이라기보다 음향이었다. "매우 섬세하고 추상적인 선율이에요. 엄격한 수학 법칙에 철저히 따르죠." 연주 직전 진은숙씨가 "소리가 안 들린다고 하면 제대로 감상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한 말이 객석에는 일종의 위안이었을까. 작곡가 쇨호른은 이날 독일에서 입국해 무대인사로 감사를 표했다.
연주곡들은 윤이상의 1966년 작 '예악'에서 영감을 받은 독일, 중국, 일본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짜여져 윤이상의 위상을 말없이 웅변하고 있었다. 타악은 죽비, 차임 소리는 범종, 핸드벨은 사찰의 풍경이었다. 대부분 세계 초연 아니면 아시아 초연이라는 사실은 연주홀에 모인 사람들을 하나의 동질감으로 묶어주었다.
주인공은 단연 생황. 중국 태생의 세계적 생황 연주가 우웨이의 생황은 37개 음이 나오는, 반음이 가능한 3옥타브의 개량 악기였다. 그의 연주를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음 주위로 서양 현악의 반주가 에워쌌다. 우웨이는 생황을 뒤집어 바람 나가는 곳으로 불기도, 가끔 악보를 넘겨가며 연주하기도 했다. 소리에서 주법까지, 모든 것들이 객석의 찬탄을 일으켰다.
커튼콜이 빗발쳤다. 넓은 홀에 아코디온 소리를 얼핏 닮은 생황 솔로가 퍼졌다. 생황의 온몸을 두 손으로 재빨리 어루만지며 주제와 복잡한 반주를 동시에 연주하기도, 발로 마루 바닥을 쾅쾅 울리기도 하는 격정적 연주였다. 3년 전 진씨가 베를린에서 우웨이를 만났을 때 반음계 등 양악기가 구사하는 모든 테크닉을 생황이 구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 바로 그 연주였다. 그로써 현대 음악의 딜레마도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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