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이 출현할 때마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사형제도의 존폐 여부는 여전히 예리한 쟁점이다. 극단 산수유의 '기묘 여행'은 일본의 경우를 빗대 사형대에 커다란 의문부호를 건다.
무대의 화두는 인간 생명의 존엄이다. 살해 당한 딸의 부모, 가해자 청년의 부모가 만난다. 두 부부 사이의 인물은 사형이 언도된 청년. 피해자의 아버지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지만, 가해자의 어머니는 항소를 통해 아들이 어떻게든 살기를 바란다. 살해 당해 떠도는 원혼, 감정을 되도록 죽이고 객관적 시선을 가지려 노력하는 양측 부모, 사이사이 삽입되는 사실적이거나 몽환적인 음악 등은 등장인물들의 내면으로 무대 상황을 집중시켜 그들 간의 단절과 아픔을 객석에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양측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교도관은 일종의 코디네이터로 무대를 객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저는 살 가치가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죽으면 속죄도 할 수 없어." 살해범과 그 부모가 나누는 대화는 사형제도의 정당성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하고 있다. 감정을 배제한 지적인 연극의 대명사로, 안정감 있는 무대의 실체를 보여줄 중견 남명렬ㆍ예수정 콤비가 연극 고유의 가치를 실현해 보인다. 커다란 아픔을 오히려 냉정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연출자 류주연의 의도가 이들 콤비의 차가운 연기에 의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무대는 지난해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란 개성적 무대로 일약 주목받은, 이 극단을 만든 여성 연출가 류주연의 두 번째 무대다. 25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02)742-0242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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