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자주 가는 재미목사가 말했다. 그를 안내한 북한의 고위관리는 집으로 초대하더니 북한에는 희망이 없다며 목사가 그들 가족을 도와달라고 했단다. 북한을 위해 제3국에서 싸워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달러를 좀 부쳐달라는 내용이었다. 대가로 뭘 해준다고 하더냐고 내가 물었더니 부자나라인 미국에 사는 동포니까 그냥 도와달라고 했단다.
고위관리가 나라를 개선할 방법을 찾지 않고 정보를 대가로 적대국 사람에게 돈을 요구해도 한심하겠지만 무작정 돈을 달라면 엘리트계급조차 거지근성이 몸에 뱄다는 뜻이니 더욱 암담하다. 북한을 이끌어갈 진정한 엘리트층이 없다는 것은 남북통일을 생각해도, 한국-조선 공존시대를 생각해도 비극이다.
증거는 없는 북한관련설 유포
그러나 국제기구에서 일하며 북한을 지원하는 남한의 활동가는, 북한의 엘리트 정신은 중앙정부에는 없는지 몰라도 지역의 전문가들한테는 살아 있다고 들려주었다. 북한에는 인력과 물자가 부족해서 놀고 있는 병원과 공장이 많은데도 중앙정부의 고위관리들은 공장을 하나 더 지으라고 권유하더란다. 떡고물이 좀더 떨어지는 모양이다.
반면 현지의 활동가들은 중앙 관리가 없는 틈을 타서 "밀가루 비율을 조금만 높이면 아이들한테 맛있는 빵을 먹일 수 있을 텐데"라고 물자 지원을 강조하더란다. 장비가 부족한 북한에서 의사들이 방사선에 노출된 채 엑스레이 촬영을 강행하는 희생정신은 스티브 린튼 박사의 북한방문기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자기가 관여하는 직역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복지를 누리게 만들겠다는 사명감으로 가득한 전문가들이 북한 곳곳에 아직 살아 있다.
이같은 도덕적인 전문가들을 어떻게 더 많이 키워내서 마침내는 북한 전체를 바꾸게 만들 것인가가 북한 연구의 최신 과제이다. 북한 스스로 민주화를 선택해야 통일비용도, 분단비용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북한에 '소프트파워'를 키우자는 이런 노력들이 된서리를 맞은 것은 2년이 넘은 일이니 말을 않겠다. 이제는 북한을 핑계 대고 남한 스스로 정부의 역할을 방기하는 증세까지 나타났다.
천안함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 탓을 하며 여론을 호도한다. 뭐든지 북한 탓을 하면 책임이 없어질 줄 아는 극우병이 도진 것이다. 14년 전 노태우 정부 시절에 북한에 돈을 주고 판문점 부근에서 총격사건을 일으켰다는 의혹을 국민들이 아직도 기억한다. 더구나 개인이든 집단이든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없으면 무죄로 추정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면서 계속 북한 관련설을 퍼뜨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설사 천안함 사건을 북한이 저질렀다고 해도 일차적으로는 남한정부의 문제이다. 그토록 괴물스러운 이웃을 가까이 두고서, 그들과 선린관계를 폐지하고 긴장관계로 돌아섰다면 접경지역의 안보를 누구보다 치밀하게 지켰어야 하는 것은 남한 정부의 책임이다. 강제징집제의 국가에서 군대에 간 청년들의 귀한 목숨을 지켜주어야 하는 것은 북한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이다.
불신 자초한 천안함 사건처리
누구 탓을 하기 전에 이 정부는 이런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정확히, 거짓없이 밝혀야 한다. 북한이 저질렀다면 왜 감지하지 못했는지, 북한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하나도 남김없이 밝혀야 한다. 발생단계부터 허둥대고 보고조차 제대로 못 받은 국방부는 사건 정황을 발표할 때마다 다른 내용을 발표해서 불신을 자초했다. 수색과정에서 귀한 인명을 또 열이나 잃었다. 군인과 어민들의 희생정신은 찬양 받아 마땅하지만 동시에 이 정부가 얼마나 몰지각하게 구성원들을 몰아붙이고 요령부득으로 일 처리를 하는지 그 무능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돌아봐야 한다. 정부가 불신을 자초하는 바람에 사건 조사는 외국전문가의 손을 빌리게 됐다.
천안함 사건을 놓고 울기보다 전말을 밝혀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는 것이 대통령이, 이 정부가 할 일이다. 무능한 정부 탓에 숨진 이들에게 휴식을 명령한다는 말장난이 나오는가. 사건 원인이나 제대로 밝혀내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명령한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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