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私)교육은 보는 대상에 따라 해석이 판이하게 다르다. 청와대, 교육과학기술부, 정치권은 "사교육은 공공의 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데 주저함이 없다. '학원 저격수'로 알려진 한 여당 의원은 "사교육이 없는 사회야 말로 진정한 선진 사회"라고 일갈하기 까지 한다.
그런데 교육을 직접적으로 수요하는 학생과 학부모들도 이런 정부 당국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까. 지역에 따라, 아니면 생활 수준 등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천편일률적이진 않을 것이다. 자녀의 성적이 올라가거나, 원하는 상급학교에 진학이라도 했다면 '망국적인 사교육'지적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매달 많게는 수 백 만원을 투자했는데도 성적이 제자리 걸음이거나, 대학 진학 등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학부모들에게 사교육은 철천지 원수에 다름 아니다.
공(公)교육은 어떤가. 교육 구매자들의 관심 밖이다. 청와대와 교과부는 귀를 닫고 싶은 심정이겠으나, 현실은 인정해야 한다. 공교육이 튼실하다면 학부모들이 사교육에 자녀들을 맡길 이유는 없어진다.
공ㆍ사교육에 요즘 아주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EBS(한국교육방송공사)와 '교육업계의 삼성'이라는 메가스터디 간의 '공ㆍ사교육 배틀(대결)'이다. MB정부 들어 재연된 사교육과의 전쟁이 단초를 제공했다고 봐야 한다.
청와대와 교과부, 여당은 전혀 줄 기미를 보이지 않는 사교육비을 잡는 데 말그대로 총력전이다. MB의'서민 속으로' 행보를 통해 과중한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는 국민들의 실상이 가감없이 드러난 이유 때문일 게다. 사교육을 정권의 순항을 가로막는 적(敵)으로 규정하고 학원 심야교습 금지 등 잇딴 사교육 대책을 내놓았지만 약발이 제대로 먹히지 않자 '히든카드'로 제시한 게 EBS 수능 강의다. 최근 EBS 강의만 제대로 이해한다면 수능에서 70점은 맞을 수 있다는 'EBS-수능 70% 연계 프로젝트'를 발표했는데, 이게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조회 및 가입자 수가 2배 이상 늘어났고, EBS 수능 교재는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이쯤 되면 '공교육의 메카'로 급부상한 EBS호(號)를 이끄는 곽덕훈 사장의 주가도 상종가를 칠 법 한데도, 그는 "갈 길이 멀다"는 말로 자만을 경계하고 있다. 메가스터디를 의식한 때문일 것이다. EBS 수능 강의는 곧잘 메가스터디와 비유된다. 대입 수능 강의의 양대 강자 임에 틀림없지만, 메가스터디의 위세에 EBS 강의는 위축된 측면이 컸었다. 강의를 한번이라도 본 수험생이라면 밋밋한 EBS 강의 보다는 현란한 메가스터디의 강의 쇼에 후한 점수를 줬을 것이다.
곽 사장의 최종 목표는 뒤집기 일 것이다. MB가 직접 EBS 본사를 찾아 수능 강의에 힘을 실어준 것은, 그에겐 상황 역전의 절호의 기회라는 판단이다. 그런데 그게 녹록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메가스터디의 대장은 손주은 대표다. 그는 '손 사탐'으로 불렸던 유명 강사 출신이다. 지금도 '손 사탐'으로 불리길 원할 만큼 강의의 귀재로 통한다. 수험생 구미를 맞출줄 아는 수능 요리사다. 손 대표는 EBS의 급도약을 내심 환영할것이다. EBS가 공교육의 첨병으로 부각되면서 수능 강의 시장은 그만큼 더 커질 게 분명해진 탓이다. 손 대표의 예상이 맞아떨어진다면 불행하게도 정부가 꿈꾸는 사교육비 경감은 물 건너 가게 된다. 공교육이 사교육에 도전했다가 무릎을 꿇는 일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EBS 수능 강의의 지향점은 사교육 수험생 줄이기에 맞춰져서는 안 될 것이다. 메가스터디 강의를 벤치마킹하는 것은 괜찮지만, 수험생 뺏어오기에 잡착해선 곤란하다. 곽 사장은 질 높은 공교육 강의만 생각하면 된다.
김진각 정책사회부 부장대우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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