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은 시간 내기 힘들어 주말에 4, 5시간 몰아서 한국 드라마를 본다. 보통 2주면 한 작품 정도는 뗄 수 있다.”
일본 도쿄(東京)의 제2금융업체 지점장인 50대 남성은 6개월 전부터 한류 드라마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젊은 시절부터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했던 그는 수년 전 ‘겨울연가’를 보고 한국 드라마에 흥미를 갖게 됐다.
최근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 이유를 우선 “주위에서 드라마를 보고 권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부인이 매일 한국 드라마를 빌려 보는 열성팬인 데다 회사에서도 빌려 온 한국 드라마 DVD를 권하는 동료 직원이 늘고 있다. “일본 드라마는 전문 배우도 아닌 10대들이 판을 치지만 한국 드라마는 30대 전후의 배우가 주축이어서 연기에 안정감이 있는데다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어른을 공경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중장년 여성의 전유물이던 한국 드라마에 매료되는 일본 남성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일본 최대 DVDㆍCD 대여업체 ‘쓰타야(TSUTAYA)’가 2008년 말 내놓은 자사의 DVD 대여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류붐의 선구자인 ‘겨울 연가’는 2004년 NHK 지상파 방송 때 대여비율이 여성 73.3%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2년 뒤 ‘대장금’은 남성 비율이 33.9%로 크게 높아졌다. 다시 2년 뒤인 2008년 NHK 방송 이후 인기를 누린 ‘태왕사신기’의 경우 남성 비율이 39.8%로 늘었다. 이윽고 ‘주몽’에서는 남성이 44.7%로 더 높아졌다가 마침내 ‘대조영’에서는 52.9%로 여성을 앞질렀다.
한국 사극의 주종은 픽션 성격이 강한 역사물이지만 현대사를 다룬 ‘제5공화국’ 같은 드라마를 즐기는 중장년 남성도 적지 않다. 일본 대형출판사에서 근무하는 50대 남성은 “군부세력의 등장 등 한국 현대사의 장면 장면이 흥미진진하다”고 호평했다.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일본 외무장관 역시 지난해 정권 출범 직후 권철현 주일 한국대사가 빌려 준 ‘제5공화국’ DVD 41편을 다 보고 “감명 깊었다”고 말했다.
쓰타야는 “최근 일본내 한국 TV드라마의 호조는 ‘주몽’이나 ‘대조영’ 등 한류 사극의 인기에 따라 한류의 기본 지지층인 50세 전후 여성에 중장년 남성이 더해진 결과”라며 “일본 남성의 한류 붐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TBS가 21일 오후 9시부터 매주 수요일 일본 TV 최초로 지상파 프라임 시청대에 방송하는 ‘아이리스’가 이런 한류붐을 얼마나 자극할지도 주목된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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