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환경車 핵심기술 선점" 세계는 배터리 전쟁
15일 대전 원촌동 대덕연구단지의 SK에너지 기술원. 벚꽃 아래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차량인 '프리우스'를 기술원 소속 연구원들이 거의 해체하다시피 들여다보면서 이곳 저곳을 꼼꼼하게 점검했다.
기술원에서 만든 2차 전지를 프리우스에 탑재한 뒤 실제 주행을 해보고 성능을 체크하고 있는 것. 정원빈(30) 연구원은 "경쟁업체와의 관계 때문에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곧 순수 전기차용 배터리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기술원의 연구원 숫자, 소속팀, 개발과제도 모두 야기해 줄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실제로 그의 명함은 아예 소속팀이 다르게 기재된 것이 3개나 있었다. 정 연구원은 "2차 전지 분야는 미래 자동차 산업과 신성장동력을 좌우할 수 있어 그야말로 국가간 명운을 건 전쟁이 진행중"이라며 "연구 과제를 수행하다 보면 하얗게 밤을 새는 날이 일주일에 3,4번이나 된다"고 말했다.
하이브리드 차량과 전기차, 지능형 전력망 사업(스마트그리드)의 핵심 부품으로 주목 받는 2차 전지가 '신(新)삼국지'로 전개되고 있다. 2차 전지 주도권을 놓고 한ㆍ일ㆍ중의 총성 없는 전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
가장 먼저 출발한 건 산요,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 업체들이지만 최근 삼성SDI, LG화학, SK에너지가 급성장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역전 드라마가 연출되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 가능성만 인정받던 중국의 BYD가 올해 다임러와 협력 관계를 맺는 등 중국도 강력한 변수로 떠 오르고 있다.
2차 전지의 경우 당초에는 노트북용 2차 전지 개발이 주목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하이브리드 차와 전기차 수요가 늘면서 시장이 급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업계에선 2017년 1,000만개의 친환경 차량용 2차 전지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어느 국가, 어느 기업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시장인 셈이다.
SK에너지는 우리 업체 중에서도 후발주자지만 올해 본격적인 2차 전지 양산을 계획하고 있는데다 안정성이 뛰어난 리튬 폴리머 전지에 승부수를 걸고 있어 주목된다.
특히 분리막 기술 등 소재 분야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게 업계 평가이다. 지난해 다임러로부터 하이브리드 차량용 리튬 이온 배터리 공급업체로 선정된 것도 이런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라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또 국책 과제인 전기차 프로젝트에 참여, 순수 전기차용 배터리를 생산할 것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업계에선 이산화탄소 배출이 0(제로)인 순수 전기차에 우리나라 기업의 2차 전지가 본격 장착될 경우, 세계 자동차 업계와 2차 전지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현대차는 올 8월 순수 전기차를 내놓고, 내년에는 1,000대까지 생산을 확대할 계획이다.
삼성SDI는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어 기대된다. 2000년 산요,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던 2차 전지 시장에 뛰어든 뒤 2008년 세계 2차전지 3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특히 올해 삼성SDI는 2차 전지 전문시장조사기관(IIT)에 의해 전세계 리튬이온 2차 전지 시장에서 세계 1위에 올라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앞서 삼성SDI는 2008년 전 세계 1위 자동차 부품 업체인 독일의 보쉬와 합작사인 SB리모티브를 설립했다. SB리모티브는 합작과 동시에 BMW의 전기차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용 2차 전지를 단독으로 공급키로 했다. 또 지난해 12월엔 역시 세계적 자동차 부품사인 델파이에 2012~2021년 하이브리드 상용차용 리튬이온 전지를 단독 공급키로 했다.
LG화학도 뒤지지 않는다. 지난해 GM과 전기 양산차인 '시보레 볼트'의 배터리 독점 공급 계약을 맺었다. LG화학은 또 현대모비스와 합작사(HL그린파워)를 설립, 연간 20만대에 들어갈 2차 전지 배터리팩을 생산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2차 전지 사업은 친환경 차와 스마트그리드 등 발전 방향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폭발적 성장을 이룰 분야"라며 "기술이 앞선 일본과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는 중국 업체 사이에서 우리만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기차 인프라 구축 등 정부의 지원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 고효율·안정성… 차세대 전지 '리튬폴리머'
2차 전지는 1차 전지(알카라인, 수은)와 달리 충전과 방전이 가능한 전지를 말한다. 반복 사용이 가능, 친환경과 경제성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차 전지에는 납축, 니켈카드뮴, 니켈수소, 리튬이온, 리튬폴리머 전지 등이 있는데 최근 자동차산업 등에서 선호하는 리튬이온과 리튬폴리머 전지가 2차 전지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2차 전지의 시초는 1890년대 납축전지다. 시동을 반복해서 켜야 하는 자동차 부품으로 필요했던 것. 또 비상용 전지가 필요했던 군사용 목적으로 각광을 받았다. 이후 1900년대 철도차량, 비행기 시동용으로 고출력 장점이 부각된 니켈카드뮴 전지가 개발됐다.
2차 전지의 전기를 이룬 것은 니켈수소 전지. 1990년대 일본에서 상용화해 도요타가 하이브리드차량인 프리우스에 탑재했다. 이후 니켈카드뮴보다 효율이 좋은 리툼이온, 리튬폴리머 전지가 속속 등장 친환경차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리튬폴리머 전지는 폭발 위험성이 있는 리튬이온 전지에 비해 안정성이 뛰어난 장점이 있으나 가격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아직 자동차 시장에서는 도요타 중심으로 하이브리드차량이 생산된 탓에 니켈카드뮴 전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으나 리튬이온과 리튬폴리머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양상이다.
리튬이온(폴리머) 전지는 양극과 음극 사이의 전해질을 통해 이온이 이동하면서 전기가 발생하는 원리다. 이온이 양극에서 분리막을 지나 음극의 결정구조 안으로 이동하면 충전이 되고, 반대로 이온이 음극에서 양극 결정구조 안으로 이동할 경우 방전이 된다.
좋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전해질, 분리막, 양음극활물질을 생산하는 소재 업체와 이를 종합해 전지를 만드는 셀 업체간의 유기적 관계가 필요하다.
■ 국내 2차전지 산업 '걸음마 단계'
2차 전지 산업의 경쟁에서 국내 업체가 넘어야 할 산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큰 변수는 2차 전지의 최대 수요 산업으로 주목 받고 있는 친환경자동차 시장. 기대만큼 빠르게 성장할 것인지 아직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특히 우리 나라의 내수 시장은 아직 맹아 단계 수준이라는게 객관적 평가다. 또 대규모 투자비용이 드는 셀 제조는 대기업 위주로 발전하고 있지만 양ㆍ음극활물질과 전해질, 분리막 등 셀 생산의 기반이 되는 소재산업이 일본에 비해 한참 뒤쳐져 있다는 평가다.
2차 전지의 최대 수요처로 지목되는 친환경차 시장 형성은 특성상 정부가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 자동차용 2차 전지는 2014년 500만개, 2017년에 1,000만개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최종 변수는 각국 정부다.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충전소 등 인프라 구축과 차구입 보조금 정책을 정부가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2차 전지 사업도 그만큼 느리게 발전할 수 밖에 없다.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곳은 일본이다. 지난달 1일 일본에는 전기차 충전소가 155개 생겨났다. 닛산은 오는 12월까지 200개의 자사 매장에 충전장치를 설치할 계획이다. 보조금 정책을 통해 전기차 상용화도 장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친환경차량에 대해 77만엔(약920만원)을 보조, 소비자는 닛산의 전기차 리프를 299만엔(약3,580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
미쓰비시의 전기차 아이미브도 소비자들이 284만엔(약3,400만원)에 살 수 있다. 이들 업체들은 6년간 전기차를 월 1,000㎞를 주행할 경우 휘발유 차량에 비해 유지비가 20%정도에 불과하다며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같은 현실은 일본의 산요, 소니, 파나소닉 등 2차 전지업체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연구개발에 나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독일은 정부가 나서서 하이브리드차량, 전기차 시장 형성을 독려하고 있다. 디젤기관에 강점을 갖고 있는 독일 자동차 업체들이 개발에 소홀하자 정부가 직접 나선 것이다. 독일정부는 최근 2020년까지 하이브리드차량과 전기차 100만대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정부로부터 확실한 신호를 받자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은 최근 전기차 개발에 잰걸음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시장 형성이 걸음마 수준이다. 정부가 대당 295만원 세제혜택을 주는 아반떼 하이브리드는 지난해 7월 본격 판매에 들어갔으나 월1,000대 판매도 힘들다. 그나마 올해부터는 사정이 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빠르면 올 8월 현대ㆍ기아차가 전기차를 관공서를 중심으로 공급하고 내년에는 1,000대 양산에 들어간다.
또 10월께 미국시장에 선보일 쏘나타 하이브리드도 내년부터 국내 시판에 들어갈 예정이다. 특히,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리튬 폴리머 배터리를 본격 장착, 성공 여부가 완성차 업체는 물론 국내 2차 전지 업체의 향후 세계시장 도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2차 전지 업계에서는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셀 제조업체 말고도 그 바탕이 되는 소재 산업의 발전이 필요하다. 분리막에서는 SK에너지, 전해질에서는 제일모직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나 저변이 부족하다. 소재 분야에서는 일본 업체들이 시장의 5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종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결국 소재산업과 내수 활성화를 정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지원하느냐가 향후 국내 2차 전지업체들의 경쟁력 확보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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