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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허트 로커'

입력
2010.04.19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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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마약과 같아서 격렬한 전투에 치명적으로 중독되곤 한다. 전쟁은 마약이다"(크리스 헤지스ㆍ뉴욕타임스 이라크 특파원)

영화 '허트 로커'는 화면이 열리기 전 한 언론인의 말을 빌어 전쟁의 속성을 분명히 정의한다. 어떠한 내용이 스크린에 전개될지 예감케 하는 대목이다. 카메라는 승리의 짜릿한 희열에도, 패배의 쓰라린 아픔에도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장이라는 이름의 지옥을 묘사하며 반전의 목소리를 높이려 하지도 않는다.

'허트 로커'는 전쟁이 군인들(확대 해석하면 사회와 인류일 수 있다)에게 던지는 정신적 타격과 그 후폭풍을 조명하며 전쟁의 실체를 고발한다. 전쟁영화임에도 지극히 정적이다. 정적이기에 되려 긴장감은 증폭된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장착한 듯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까지 서스펜스를 이어간다. 관객의 시신경보다 심리를 파고드는, 보기 드문 수작 전쟁영화다.

이라크전이라는 트라우마

카메라는 이라크 바그다드에 파견된 미군 폭발물 제거반의 임무수행을 좇는다. 귀환을 38일 앞둔 제거반은 불의의 사고로 팀장을 잃게 되고, 제임스(제레미 레너) 상사가 새롭게 부임한다. 제임스 상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 방호장비를 벗어 던지고 폭발물 제거에 따른 쾌감을 즐긴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폭탄을 제거할 수 있는가"라며 격려하는 상관에게 제임스 상사는 간단히 대답한다. "죽지 않으면 됩니다." 무사귀환을 손꼽아 기다리는 데다 이전 팀장이 눈앞에서 '불귀의 객'이 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샌본(안소니 마키) 하사와 엘드리지(브라이언 개러티) 상병에게 제임스 상사는 위험천만의 인물이다.

호전적으로 보이지만 제임스는 전쟁을 사랑하지 않는다. 전쟁이 낳은 참상을 보며 그의 얼굴은 종종 일그러진다. 불법 DVD를 파는 이라크 어린이와 욕설 섞인 대화를 나누면서도 아이를 동정한다. 이라크 저항세력에 의해 그 아이가 폭탄 설치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생각한 그는 이성을 잃고 바그다드의 밤거리를 헤매기도 한다. 보편적 인간애를 지닌 그는 단지 전쟁에 중독됐을 뿐이다.

제임스 상사는 말한다. "내가 왜 목숨 걸고 임무를 수행하는 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좋아지는 건 적어진다. 내 나이 정도되면 한 두 개 남을까. 내 경우엔 하나뿐이다." 그가 탄 전투차량을 이라크 아이들이 쫓으며 돌을 던진다. 미군과 미국은 어쩌면 중독과도 같은 관성에 의해 이라크전을 수행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영화는 말한다.

정중동의 서스펜스 탁월

전쟁영화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장대한 스펙터클이 시각을 압도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등장 인물들의 활동을 멍하니 바라보듯 움직임에 인색하다. 스펙터클도 춤추는 듯한 역동적인 카메라의 움직임이 없어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조용히 마음을 뒤흔드는 정중동의 서스펜스가 영화 전반을 장악한다.

영화의 백미는 사막의 전투 장면이다. 제임스 상사 등은 수거한 폭발물들을 사막에서 폭파 처리하고 귀대하다 저항세력의 복병과 마주친다. 제임스 상사 일행은 목을 조여오는 더위와 싸우며 저격수들과 피 말리는 대치를 지속한다. 그때 카메라는 한가롭게 회오리 바람이 모래를 쓸어 올리며 사라져 가는 모습을 포착한다. 병사들의 고립을 강조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장면으로 고즈넉하면서도 쓸쓸하기 그지 없다. 수십 대의 폭격기가 동원된 폭격장면이나 그 어떤 대형 전투 장면보다 감정의 동요를 이끌어낸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과 감독상 등 6개의 트로피를 가져갔다. 비글로 감독에게 여성 최초의 감독상을 안겼다. 2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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