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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으로 본 한국 근대사' 출간/ 불평등조약 야금야금… 조선은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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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으로 본 한국 근대사' 출간/ 불평등조약 야금야금… 조선은 사라져 갔다

입력
2010.04.1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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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체결 과정을 통해 일반인들도 뼈저리게 실감했지만 세계화시대에 조약의 영향력은 막대합니다. 19세기 후반은 세계화의 첫번째 시기였는데 당시 조선이 열강과 맺은 조약을 엄밀히 연구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부분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조선이 외국과 맺은 첫번째 조약인 조일수호조규(1876)로부터 일본에 강제병합되는 한국병합조약(1910)까지, 근대 개항기 조선이 외국과 맺은 주요 조약을 분석한 <조약으로 본 한국근대사> (열린책들 발행)가 최덕수(58)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가 이끄는 고려대개항사연구팀에 의해 출간됐다.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은 근대정치사상, 근대교육사상, 근대관계사 등을 전공한 5명의 근대사 전공자들이 3년 동안 매달려 얻은 성과물이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올해 출간돼 의의를 더한다.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조약들뿐 아니라 영국이 일본의 한국 보호권을 인정한 제2차 영일동맹(1905), 미국과 일본이 한국과 필리핀의 운명을 거래한 가쓰라-태프트 비망록(1905) 등 조선 문제와 관련해 일본과 서구 열강이 맺은 중요한 국제조약을 포함해 모두 30여 개의 조약을 다루고 있다.

필자들은 각 조약의 체결 배경과 과정, 조약의 본문과 부속문서를 실었을 뿐 아니라 각 조항 하나하나의 의미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다. 조선이 어떻게 문호를 개방했고 제국주의 열강이 약소국 조선에 어떤 식으로 영향력을 끼치려 했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돋보인다. 각종 조약 체결의 파급효과를 당시 조선과 상대국의 지식인들이 어떻게 평가했는가를 보여주는 국내외 언론 보도도 실었다.

"조약이라는 것은 문건이므로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잘 파악하고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조선은 조약을 맺는 과정에서 실수를 거듭한 점이 아쉽다"고 저자들은 입을 모은다. 조일수호조규에서부터 허점을 드러냈다. 난파된 일본 선박의 구난과 관련된 조항인 제6관(항)에 '지정한 항구에 도달할 수 없으면 즉시 어느 연안이든지 항구에 들어갈 수 있다'는 조항은 일본 선박이 개항장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유사시 조선의 어떤 항만에도 상륙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조항이다. 또 조선은 한문으로 일본은 자국어로 문서를 작성하도록 한 제3관도 문제였다. 양국의 한문 해석이 다를 경우 일본이 자국어 해석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분쟁의 소지를 제공한 것이다.

이처럼 조약은 국가 간 역학을 읽어낼 수 있는 프리즘이다. 약소국인 조선은 서구 열강과 조약을 맺으며 불평등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조영수호통상조약(1883)은 조선이 맺은 불평등조약의 완결편 격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인들이 조선에 거주하는 영국인을 고소하거나 영국인이 범법행위를 저지를 경우 영국 법원이 심판하도록 했는데 이는 조선의 사법권을 무시한 항목이다.

이 책이 조약과 관련된 연구사적 논쟁을 다루고 있는 점도 의미있다. 가쓰라-태프트 비망록은 지금까지 미국과 일본이 서로 조선과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한 조약 성격의 비밀협정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태프트에게 일본을 방문해 극동 문제에 대해 의논하라는 루스벨트의 훈령이나 명령이 없었으며 태프트가 자신의 의견을 사견이라고 여러 번 밝혔다는 점에서, 가쓰라-태프트 회담은 국가 간에 체결된 협정이나 협약의 성격이 없다는 연구를 소개하고 있는 점이 좋은 예다. 책은 연구자들을 위한 자료집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한자와 조사로만 이뤄져 읽기 힘든 조약 원문을 현대어로 풀이했다.

일본 와세다대 교환교수로 지난달부터 일본에 머물고 있는 최 교수는 "조약 전문을 읽어보는 것과 조약의 일부만을 읽는 것은 해석과 설명의 측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며 "국제조약과 관련된 실무자, 정치인들뿐 아니라 역사교사들에게도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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