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6월 24일 인도네시아 상공(고도 1만1,000m)을 지나던 영국항공 소속 보잉747 여객기의 엔진 4개가 갑자기 멎었다. 런던을 출발, 쿠알라룸푸르에 기착했다가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로 가던 중이었다. 기장은 연신 "메이데이(Mayday 항공기 조난신호)!"를 타전하며 살핀 끝에 엔진 속의 공기압축기가 알 수 없는 물질로 손상됐다고 판단했다. 항공기를 급강하, 맑은 공기로 '엔진 세척'을 시도하며 자카르타 공항에 글라이딩 착륙했다. 상공 400m 지점에서 엔진 2개의 기능이 일부 작동했지만 263명 모두가 목숨을 건진 것은 기적이었다.
■ 불시착한 뒤에야 자바 섬 화산 폭발로 형성된 화산재 구름이 원인이었음이 밝혀졌다. 화산재가 구름 속에 섞여 항공기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 경우는 종종 있다. 1989년 12월 15일 앵커리지 상공에서 KLM네덜란드 항공 보잉747도 화산재 구름과 만나 엔진 4개가 모두 꺼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때에도 급강하하며 엔진을 '자동 세척'했는데, 3분 여 뒤에 정상화했다. 모두가 운이 좋았던 경우들이었다. 유사한 사례는 처음 원인이 밝혀진 1973년 이후 30건 이상 보고됐다. 화산 활동을 완전히 예측할 수 없으니 피해 가는 게 최선이다.
■ 지난 14일 아이슬란드 화산이 폭발, 화산재가 유럽을 뒤덮고 오늘쯤엔 우리나라 상공까지 날아온다고 한다. 화산에서 나오는 물질은 액체인 마그마와 함께 고체로 화산탄, 화산암조각, 화산자갈, 화산재(크기 순) 등이 있다. 화산재는 대개 지름이 1㎜ 이하지만 4~5㎜로 뭉쳐지기도 한다. 이것들은 화산가스나 공기의 수증기와 합쳐 화산구름이 되기도 하고, 일반 구름에 섞이기도 한다. 마그마 속에서도 녹지 않고 고체로 남았던 것들이니 그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항공기 엔진 속에 반죽처럼 끼이기도 하고 조종석 유리를 손상시키기도 한다.
■ 사고는 예방하는 게 최선이지만 불가피한 경우가 없을 수 없다. 사고 후 대처하는 지혜와 용기는 예방 만큼이나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영국항공 기장의 당시 기내방송은 지금도 모든 항공사가 귀감으로 여기고 있다. "승객 여러분, 기장입니다. 작은 문제(small problem)가 발생했습니다. 엔진 4개 모두가 멈췄습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do our damnedest) 정상화시키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항공기가 자유 낙하하는 16분 동안 승객들은 난리를 피우지 않았고, 승무원들은 2개의 엔진이나마 살려낼 수 있었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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