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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천안함 특종에 비친 '한심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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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천안함 특종에 비친 '한심軍'

입력
2010.04.19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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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는 천안함 침몰 사고와 관련해 몇 번 특종을 했다. 파장이 컸던 것도, 미미했던 것도 있었지만 담당 데스크로서는 아비가 자식들을 대할 때처럼 어느 쪽이나 다 똑같이 정이 간다. 다만 이 가운데 유독 뇌리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이 있다. 한심하고도 황당한 군의 본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3일자 1면에 게재됐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산하 백령도지질관측소가 사고 당일인 지난달 26일 오후 9시21분58초 지진파를 감지한 사실을 다음 날인 27일 정부에 통보했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 골자였다.

군은 사고 당일 사고 시각이 9시45분께라고 발표했다가 다음 날 9시30분께로 정정했다. 이 보고를 받은 것은 바로 이 즈음이었다.

필자가 이 보고에 접한 군인이라면 당연히 ‘어, 이게 웬 지진파’라고 의구심을 품었을 것이다. 당연히 연구원에 상세한 자료를 요구했을 터이다. 그러면 연구원은 보고서에 적힌 내용을 다시 확인해 주면서 상세한 설명도 해 줬을 것이다. 바로 ‘지진파가 천안함 사고와 관련이 있고, 이 시각을 사고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내 공식 사고 시각을 바꿨을 것이다.

그런데 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무슨 조화인지 이 보고를 그냥 묵살해 버렸다. 그리곤 이후에도 줄곧 9시30분께라는 사고 시각을 고집했다(물론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29일 국회에서 9시25분께라고 언급했지만 군의 공식 브리핑에선 여전히 9시30분께였다). 그러다가 이달 1일 뒤늦게 이 지진파 감지 시각을 핵심 근거로 사고 시각을 9시22분께로 고쳤다.

사고 시각은 언론이 이 사고가 몇 시 몇 분 몇 초에 발생했다고 확실하게 쓰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고 시각이 정확히 나와야 그날 밤 군이 얼마나 신속하게 구조에 나섰고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 적절한 시각에 합당한 조치를 내렸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이러다 보니 군이 최대한 사고 시각을 늦춰 발표했다가 정황이 드러날 때마다 할 수 없이 조금씩 당겼다는 의심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공식 사고 시각이 늦으면 사고 후 구조까지 걸린 시간도, 군이 대북 대응 태세를 갖추는 데 걸린 시간도 줄어든다. 군으로서는 참 고마운 일 아닌가. 9시22분께라고 발표한 이후 사고 시각 논쟁은 자취를 감췄지만 이전까지의 모든 의혹은 군 스스로 자초한 셈이다.

더 한심한 것은 ‘지진파 시각을 왜 초기에 반영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여러 정황을 종합적으로 보고 상황을 판단해야 했다”고 한 군의 해명이다. 그러나 지진파만큼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는가.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없이 우선적으로 고려해 사고 시각을 바꿨어야 했다. 종합 고려라는 군의 해명을 받아들인다 해도 거기에 닷새나 걸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국에서 군은 양지와 음지 모두를 오갔다. 군사정권 때는 마냥 잘 나가는 집단이었고 문민정부 이후에는 그다지 기를 펴지 못하는 세력이었다. 그렇더라도 북한이라는 도발적인 적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점 때문에 언제나 한 수 접어 주는 온실 속 화초였던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군에 대한 국민의 정서를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됐다. 군을 마냥 온실 속에 두어도 좋은가 하는 근본적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군도 이런 변화를 읽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는다는 자세에서 새출발해야 한다.

이은호 정책사회부장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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