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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고라니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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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고라니뼈

입력
2010.04.1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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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을 걷다가 본다

살점이 죄 발라진 고라니뼈,

두개골부터 목뼈 등뼈 뒷다리뼈까지

흐트러짐 하나 없이 가지런하다

앞다리 두 개만 따로 으깨져 잘려 나갔다

뼈마디마다 박혀 있는 검붉은 핏기,

어젯밤이거나 그저께 적어도 그끄저께 밤쯤에

변을 당했다는 것, 증명해주고 있다

발자국 어지러운 강변을 따라

고라니털이 뭉텅뭉텅 수북수북 뽑혀 있다

필시, 고라니는 물 마시러 왔다가 당했을 것이다

하필, 어떤 산짐승의 끼니때와 겹쳐서 당했을 것이다

배고픈 살쾡이나 너구리나 담비 무리

혹은, 굶주린 여우나 늑대의 식사시간

고라니가 물 한 모금 마시러 온 시간

어떤 산짐승이 끼닛거리를 노리는 시간

물 한 모금과 목숨이 아무렇게나 뒤엉킨 시간

끝내 고라니 편이 되어주지 않은 시간,

턱뼈에 붙은 송곳니가

이미 잘못 지나간 끔찍한 시간을 물고 있다

● 내가 죽고 난 뒤의 세상에 대해서 생각해본 일이 있어요. 그런 거 생각해서 뭐해? 내가 알게 뭐야? 제일 먼저 든 생각이구요. 그때도 다들 잘도 살아가고 있겠지. 누군가가 죽고 난 뒤에 내가 그랬듯이. 두 번째로 든 생각입니다. 죽음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자고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건, 삶에 대해서 말해도 그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겠죠. 사랑에 대해서 말하기에도, 또 꿈에 대해서 말하기에도. 아무리 많아도 삶의 시간은 부족한 모양입니다. 고라니가 죽은 뒤에도 고라니의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 걸 보니. 슬픔의 연원에 시간이 있군요. 우리가 가졌던, 혹은 가지지 못했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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