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윤고은(30)씨의 가장 큰 문학적 자산은 누가 뭐래도 기발한 상상력일 것이다. 그는 첫 장편 <무중력증후군> (2008)에서 달이 주기적으로 하나씩 늘어나는 이변이 생겼다는 설정 아래 온갖 상상력을 발휘, 지구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기도 했다. 윤씨가 2004년 등단 이후 발표한 단편 9편을 묶은 첫 소설집 <1인용 식탁>(문학과지성사 발행)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다채로운 상상력의 향연이다. 무중력증후군>
표제작은 홀로 먹는 식사에 익숙해지려고 전문 학원에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도 모르게 점심시간마다 직장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외진 식당을 전전하던 여주인공은 학원 수강을 통해 원하는 음식을 어디서든 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간다.
'박현몽 꿈 철학관'에 등장하는 철학관은 예사 철학관이 아니다. 그곳은 박현몽이 꾼 꿈을 병에 담은 '몽유병'을 파는 곳이다. 소설가는 이곳에서 풀어쓰면 그대로 작품이 될 만한 꿈을, 복부인은 돈을 벌어다 줄 주식을 일러주는 꿈을 산다. '로드킬'의 배경은 방값이 쌀수록 천장이 낮아지는 객실과 다양한 자동판매기가 구비된 고지대의 무인 호텔. 이곳에선 방에 들 때도, 섹스 도구를 살 때도 모두 투입구에 돈을 넣어야 한다.
윤씨는 "내가 '현실의 구멍'이라고 부르는, 문득 현실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에, 작품 소재를 발견하곤 한다"고 말했다. 평소 혼자 식당을 찾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던 그는 친구로부터 "혼자 밥 먹는 일이 너무 힘들다"는 말을 듣고 불현듯 표제작 '1인용 식탁'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한다. 날마다 백화점 화장실에 들어앉아 두루마리 휴지에 소설을 쓰는 무명 작가의 이야기 '인베이더 그래픽'은 화장실 전원에 노트북을 연결해 급한 원고를 썼던 그 자신의 경험이 단초가 됐다. 남다른 감수성으로 포착한 '현실의 구멍'에 맛깔스러운 상상을 채워 넣으면서 윤고은표 소설이 탄생하는 셈이다.
윤씨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현실에서 비롯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런 이유로 그의 단편들은 대개 존재 본원의 고독, 강고한 사회구조 같은 것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인간 조건에 대한 근사한 알레고리로 읽히는 것이리라. 예컨대 "누군가와 같이 먹기 위해 우리가 낭비하는 모든 것들, 생각해봤어?"(35쪽)라고 호기롭게 외치며 홀로 밥 먹기를 고수하던 이들이 어쩌다 같은 식당에서 서로 마주치기라도 하면 부랴부랴 합석하는 일 같은 것('1인용 식탁')이다. 또 언젠가 회사를 때려치우고 꿈의 나라 아이슬란드에 갈 거라며 준비해뒀던 이민용 가방을 결국 회사 근처로 거처를 옮길 때 이삿짐 가방으로 쓰고 마는 이유 같은 것('아이슬란드')이기도 하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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