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열, 그는 역사의 눈이다. 처참하게 눈이 멀어 역사의 눈이 되었다. 우리의 영원한 눈동자, 부활하는 역사의 눈이다."
4ㆍ19혁명 50주년을 맞은 19일 전북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 김주열(1943~1960) 열사 묘역광장에서 열린 추모식과 묘비 제막식에서 금지중 후배인 박성준(중2)군과 김진(중2)양이 추모시를 낭독해 참석자들을 숙연하게 했다.
이날 제막된 김주열 열사의 묘비에는 50년 만에'열사(烈士)'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1960년 장례 후 만든 목비(4월의 영혼, 고 김주열군지묘)와 1964년 유진오 박사가 쓴 비석(김군주열지묘), 1994년 만든 비석(김주열지묘) 모두'열사'를 표기하지 않았다.
남원시와 남원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는 4ㆍ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 열사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민주이념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2006년부터 3만2,132㎡의 토지를 매입해 생가복원, 주차장 조성에 이어 지난달 1억원을 들여 봉분과 계단 확장, 석물 설치 등 묘역을 정비했다. 이날 묘비 제막식에는 김완주 전북지사와 최중근 남원시장, 유족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묘비석 정면에는 '열사 김주열의 묘'라는 글자가 새겨졌고 나머지 3면에는 열사의 이력과 3ㆍ15 의거 및 4.19혁명 등이 900자 정도로 기술됐다. 특히 "1960년 4월 11일 눈 부위에 최루탄이 박힌 열사의 시신 인양은 '열사 부활'이었고, 그가 없었다면 4.19혁명이 없었을 것이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제막식을 마친 후 누나 영자(74ㆍ서울 은평구), 경자(69)씨와 남동생 길열(54)씨는 말끔히 단장된 김 열사 묘소의 봉분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글썽였다. 영자씨는 "동생을 위해 생가를 복원하고 봉분과 묘비까지 새롭게 단장해 주어 모든 분께 고맙다. 그 동안 가져왔던 동생에 대한 미안함이 조금은 없어졌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 김영만 전 마산대표는 "항상 빚진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지난 11일 마산과 남원에서 50년 만에 범 국민장으로 장례를 치른 데 이어 묘비 정비까지 모두 마쳐 조금이나마 빚을 갚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4ㆍ19혁명 50주년을 맞아 이날 전국에서 다양한 기념행사가 펼쳐졌다. 서울 동작구 수유동 국립4ㆍ19민주묘지에서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최로 '4ㆍ19 푸른 혁명'사진전이 개최됐고 오후 3시부터는 서울강북문화원 주관으로 4ㆍ19혁명 희생자 추모 음악회가 열렸다.
서울대는 이날 오전 9시께 관악캠퍼스 내 4ㆍ19기념탑에서 기념행사를 가졌고, 단과대 학생회장 연석회의는 오후 2시께 재학생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마라톤 대회를 열었다. 고려대는 교내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자유, 너 영원한 활화산이여'라는 제목의 사진전을 열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최수학기자 s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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