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황상제 일월성신…."당주무녀(堂主巫女ㆍ굿을 주관하는 무녀)가 방울을 흔들고 발을 동동거리며 산신을 목청껏 불렀다. 좌우 대잡이 두 명도 흰 쌀이 담긴 항아리에 꽂아둔 참나무 가지를 흔들며 몸을 빙글빙글 돌렸다. 참나무 가지에 달린 삼베와 흰 천이 청명한 바람 결에 하늘거렸다. 무녀의 부름에 대한 산신의 응답인 양.
악귀를 내쫓고 조상을 청배(請陪)하는 굿에 이어, 드디어 마을 수호 산신을 모셔오는 '산맞이 굿' 순서였다. 하루 종일 21개의 굿이 펼쳐지는 '삼각산 도당제(都堂祭)'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삼각산 도당제 전승보존회 회원 유광필(66)씨는 "결혼식 폐백에서 삼베를 바치는 것처럼 삼베와 흰 천, 흰 쌀 등은 길한 기운을 갖고 있다"며 "당주무녀가 삼각산(북한산) 산신을 부르면, 신이 참나무를 타고 내려와 이곳에 머물게 된다"며 참나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16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도선사 인근에서 주민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삼각산 도당제가 열렸다. 도당제는 봄이 시작되는 삼짓날(음력 3월 3일)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 등을 기원하기 위해 열린 산신제로, 고려 말에 형태를 갖춰 내려온 전통 마을 굿이다. 일제 시대와 1960년대 근대화를 거치면서 차츰 사라졌으나 삼각산 도당제는 우이동 주민들이 1980년대 들어 복원하기 시작했고 2006년에는 학술적 고증도 받아 전통적인 방식으로 성대하게 열리고 있다.
굿판이 벌어지는 마당에는 신을 모시기 위한 제사상이 큼지막하게 차려졌다. 돼지머리와 생두부, 시루떡, 콩, 대추, 쌀, 고사리, 팥, 계피, 감 등이 상 위에 올랐고 무녀 4명과 피리, 해금 등을 연주할 당주악사 4명, 화주(化主ㆍ마을 대표) 3명 등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제사상 옆에는 흰 종이 한 묶음이 나무에 걸려 있었다. 산신이 머무는 자리였다.
산신이 내려왔으니 주민들이 한해 운세를 기원할 요량으로 당주무녀 박명옥(71)씨 주변으로 몰려들었다.'천궁(天穹)맞이'순서다. 박씨가 가슴에 안고 있던 밤과 대추 등을 주위로 던지자 주민들이 옷으로 받았다. 제 각각 받은 숫자를 세어보더니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대추를 받은 원금자(58)씨는 "무당이 주는 것은 일종의 신탁(神託)이다"라며 "짝수면 길운을 뜻하는데, 딱 8개의 대추를 받아서 올 한해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안혜순(51)씨는 "딸이 올해 대학을 졸업을 하는데, 건강하고 취업도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관재(官災)와 송사 등을 막아주는 굿인 '장군거리', 제석신(帝釋神ㆍ수명ㆍ곡물 등을 맡는 신)을 부르는 굿인 '제석청배' 등이 이어졌다.
굿의 절정은 역시 작두타기. 무녀 김금심(57)씨가 맨발로 80cm 길이의 작두에 올라 30여분간 삼지창을 흔들어댔다. 이 동네에서 6ㆍ25 때 숨진 원혼의 액(厄)을 풀어주기 위한 의식이다. 보존회 관계자는 "신의 권능을 보여줌으로써 원혼들을 물러가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변에 몰려든 주민들은 놀랍고 신기한 듯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도당제는 이후 마을의 액을 막고 사냥감이 많이 잡히기를 기원하는 '사냥놀이', 각 가정의 행운을 기원하는 '소지(燒紙)' 등이 진행된 뒤 저녁 9시30분께야 끝났다. 아침 7시부터 14시간 반 가량 걸린 한바탕 대동굿판이었다.
삼각산 도당제는 이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전통 문화다. 마을 사람들을 대표해 제를 주관하는 화주 역할을 한 안삼웅(70)씨는 "지금 9대째 우이동에 살고 있는데 매년 삼각산 도당제에 참여해왔다"며 "내가 열 살 때인 6ㆍ25때 어른들이 전쟁에 나간 자식들이 무사히 돌아오라고 저녁이면 이곳에 나와 정한수를 떠놓았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안씨는 "옛날에는 도당제를 앞두고는 어른들이 부정 탄다고 임신부도 경기 양주로 가서 애를 낳게 할 정도로 엄격했다"며 "지금도 화주가 되면 한해 동안 상갓집이나 애 낳는 집에는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최승현(88) 전승보존회 회장은 "옛 전통이 끊겨 명맥만 이어오다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부락제'라는 책자에 '우이동 도당제'의 내용이 담겨 있어 그것을 참고로 1980년대부터 복원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김헌선 문화재위원은 "서울에 20여개의 민속신앙이 간신히 명맥만 유지해오고 있는데, 밤섬 부군(府君)당굿, 신당동 애기씨당굿, 봉화산 도당굿 등이 그나마 옛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며 "각각의 굿이 지역 마을의 특색을 보여주는 만큼 보존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내년 도당제를 주관할 새 화주 4명을 뽑는 의식도 진행됐다. 조롱박에 마을 주민들의 이름이 새겨진 은행알을 넣은 뒤 은행알을 뽑는 방식이었다. 새로 화주로 선택된 주민들은 난감해하면서 웃음을 잃지 않았다. 최승현 회장은 "조만간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등록할 예정인데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문화로도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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