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 피어스 지음ㆍ김정은 옮김/브렌즈 발행ㆍ520쪽ㆍ2만2,000원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시 '섬진강'의 마지막 구절이다. 그러나 강의 생명력을 예찬하는 시인의 말이 무색하게 섬진강은 말라가고 있다. 섬진강 댐의 물은 전북으로, 가장 큰 지류인 보성강 물은 전남 영산강 수계로, 하류인 하동 바로 앞에서는 광양 취수장으로 물을 빼앗겨 하천 유지 용수가 부족한 상태다.
환경 전문 기자 출신인 영국의 저술가 프레드 피어스가 쓴 <강의 죽음> 은 말라 죽어가는 세계의 강을 찾아다닌 기록이다. 10년 간 6대륙의 강을 직접 돌아보고 썼다. 2006년 나온 원서 제목은 '강이 바닥을 드러내면'(When the Rivers Run Dry)이다. 강의>
강은 흐르고 흘러 바다로 간다는 상식과 달리, 많은 강들이 바다에 이르기 전에 말라붙어 모래 속에서 찔끔찔끔 흐르는 신세가 됐다. 이집트의 나일 강, 중국의 황허 강, 파키스탄의 인더스 강, 미국의 콜로라도 강과 리오그란데 강, 오스트리아의 머리 강, '중앙아시아의 나일강'으로 불렸던 옥서스 강 등 세계의 주요 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내해인 아랄해는 그리 흘러드는 두 강이 말라버려 사막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 책은 왜 그런 일이 생겼으며 그로 인해 어떤 재앙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생하게 전하고, 강을 건강하게 되살리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제안한다.
강을 말려 죽이는, 김용택 시인이 욕한 '후레자식'은 이 책에 따르면 '인간이라는 스펀지'다. 특히 사람이 먹을 곡물을 생산하느라 쓰이는 물의 양은 엄청나다. 사람이 하루에 마시는 물은 5리터, 생활용수를 합쳐 하루에 150리터쯤 쓰는 반면, 쌀 1㎏ 생산에 드는 물은 2,000~5,000리터, 쇠고기 1kg 생산에 드는 물은 2만 4,000리터나 된다. 면의 원료인 목화도 재배하는 데 물이 많이 드는 작물이다. 호주의 머리 강, 중앙아시아의 아랄 해, 파키스탄의 인더스 강은 목화를 재배하느라 말랐다. 저자는 대규모 관개농업을 수자원 착취라고 본다.
강물이 마르면 먼 데서 물을 끌어오고 그래도 안 되면 지하수를 파서 쓰는 일이 전 세계에서 반복된 결과, 지하수도 고갈되고 있다. 지은이는 마음껏 먹고 쓰고 입는 소비문화부터 바꿔야지, 기술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강을 망치고 물이 마르게 하는 또다른 주범으로 이 책은 댐을 세워 물을 가두거나 물길을 돌리는 거대 토목공사를 지적한다. 댐을 건설해서 얻는 이득보다 손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이는 20세기 하반기에 전 세계 92개국에서 대형 댐 건설에 750억 달러를 지원했던 세계은행이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세계은행이 2000년 말 발표한 보고서는 농업용수와 생활용수 확보, 수력발전, 홍수 예방 등 댐 건설의 목적으로 내세운 것들이 전부 목표에 미달했고, 홍수는 더 자주 일어나거나 횟수가 준 대신 규모가 커졌으며, 토양이 황폐해지고 생태계가 파괴됐다고 밝혔다. 단기적으로는 이득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는 것이다.
강이 바닥을 드러내자 지하수를 활용하면서 또다른 비극이 생겼다.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도록 유니세프가 90만개가 넘는 우물을 팠는데, 그 바람에 지하 암반에 들어있던 불소화합물과 비소까지 끌려 올라와 사상 최대의 집단 중독이 일어났다.
강을 길들이겠다는 생각은 어리석다고 이 책은 지적한다. 홍수를 예방하겠다며 제방을 쌓고 댐을 건설하고 강을 정비하는 것으로는 물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이 지은이의 결론이다. 그 예로 그는 2002년 독일과 체코 등 중부유럽을 덮친 사상 최악의 홍수를 든다. 이때 범람한 엘베 강과 블타바 강은 모두 홍수를 없애려고 정비했던 강들이다. 강은 자연 그대로 넘치기도 하고 마르기도 하면서 흘러야 한다, 가두거나 바꾸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저자는 물이 모자란다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할 게 아니라 빗물을 모아 쓰고, 물이 덜 드는 농법을 개발하는 등 있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미국 로스앤젤레스는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어 지하에 머물 수 있도록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도시 전체의 투수성을 높이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한국어판 서문을 따로 붙이면서 저자는 4대강 사업을 언급했다. 그는 강을 정비했다가 오히려 후유증을 겪고 원상 회복에 나서고 있는 유럽과 북미의 사례를 들며 4대강 사업의 위험을 경고했다. 돈과 기술을 다 쏟아부어도 강을 다스리기는 어렵다, 강은 자유롭게 흘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100년 전 미국이 미시시피 강을 정비할 때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도 洲좡?말을 했다. "거침없이 흐르는 강을 길들일 수는 없다. 이리로 흘러라, 저리로 흘러라 하며 복종시킬 수 없다."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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