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공간 환경을 만들지만, 역으로 공간 환경은 인간을 만든다. 공간 환경은 인간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과 아이들의 더 나은 삶,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우리 삶의 터전을 보다 살기 좋은 곳, 즐거운 곳,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의 공간 환경은 우리 사회의 변화 패턴과 마찬가지로 70년대의 개발 독재식 성장 위주로 진행돼 왔다. 하늘 높이 치솟은 빌딩과 늘어나는 자동차는 산업화의 상징이었고, 가로수 그늘 아래에서 쉴 권리, 편하게 보행할 권리는 산업화 작업에 고스란히 헌납됐다. 공간 환경이 산업 논리를 기준으로 성장했고 발전해 왔던 것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삶의 질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디자인과 문화적 가치에 대한 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디자인은 도시의 미래’라는 전제 하에, 특히 서울의 미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여러 정책들이 만들어졌다. 서울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도시, 서울만의 고유한 것으로 세계 무대에서 승부하는 특별한 브랜드 가치가 있는 세계 도시로 만들겠다는 의지로 이해할 수 있다.
그 결과 올해 초부터 서울시에 잇달아 낭보가 날아들었다. 미국 뉴욕 타임스(NYT)는 ‘2010년 꼭 가봐야 할 도시나 국가’ 31곳 가운데 서울을 세 번째로 꼽았다. 이어 영국의 유명 디자인 전문지 월 페이퍼는 서울을 뉴욕, 베를린 등과 함께 ‘2010년 베스트도시 후보’로 선정했다. 앞서 베이징, 도쿄, 방콕에서는 서울을 가보고 싶은 도시 1위로 꼽기도 했다.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은 갈수록 도시디자인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도시디자인의 성공사례를 공유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최근 서울에서 열린 ‘세계 디자인도시(World Design Cities) 서미트’에서 기조연설을 한 독일의 저명한 미래학자 마티아스 호르크스의 발언은 도시디자인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디자인을 단지 겉멋의 사치로 오해할 수 있으나, 실제 디자인은 인간이 손과 머리를 쓰기 시작하면서 인류를 발전시켜온 원동력이자 미래로 향하는 열쇠다. 디자인은 과거의 사고 방식을 통해서는 창출될 수 없는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에너지와 친환경을 도시에 제공할 것이다.”
또한 이번 서미트에 참석한 이탈리아 토리노의 서지오 치암파리노 시장은 토리노가 2년 전 세계 디자인수도로 선정돼 신규 투자와 국제행사 유치가 증가하는 등 도시경쟁력이 살아났다고 강조했다. 그는 “디자인은 도시의 부를 가져다 주는 원동력이며, 서울은 디자인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중요한 기로에 섰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의 이 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서울의 도시디자인 정책들을 전시행정에 비유하며, 마치 디자인된 서울은 아직 이르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어 안타깝다.
어찌 보면 공간디자인이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책적인 뒷받침이나 행정기관의 적극적인 지원 없이 민간의 노력만으로 공간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간디자인이 정치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의 삶을 보다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간 환경을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일관성 있는 디자인 정책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시간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오인욱 경원대 환경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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