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출간된 <스포츠 손자병법> 을 보면 '적과는 달리 경쟁자인 라이벌은 서로서로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따라서 라이벌이 쓰러지면 자신도 쓰러지고 만다'는 구절이 있다. 이른바 라이벌이라는 존재가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는 '라이벌 예찬론'이다. 요즘 한국 남자 탁구계에서도 '라이벌 효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 탁구를 이끌 재목으로 꼽히는 '유망주 3인방' 서현덕(19ㆍ삼성생명), 정영식(대우증권), 김민석(이상 18ㆍKT&G)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14일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3인방은 '타도 만리장성'을 자신 있게 외쳤다. 스포츠>
▲'만리장성의 벽'은 낮다
중국은 현재 세계탁구를 호령하고 있다. '적수가 없다'고 평가 받는 중국탁구지만 고속성장하고 있는 '유망주 3인방'에겐 넘지 못할 벽은 아니다. 서현덕(세계랭킹 32위)은 이미 시니어대회에서 중국 선수를 이긴 적이 있다. 서현덕은 지난 2월 카타르오픈 32강에서 중국의 차세대 에이스로 꼽히는 쉬신(랭킹 7위)을 4-1로 제압했다. 그는 "그 동안 중국 경기를 보면서 정말 탁구를 잘 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붙어보니 벽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고 당차게 말했다.
최근 중국 선수와 맞붙은 김민석(41위)과 정영식(61위)의 생각도 마찬가지. 오른손 셰이크핸드 김민석은 "아시안컵에서 중국 선수와 만났다. 그 동안 동영상만 보고 너무 높게 평가했던 거 같다. 그 선수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넘지 못할 건 없다"고 털어놨다. '두뇌파' 정영식은 "과감하고 공격적인 탁구로 중국 선수들을 당황시키며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 가겠다"고 타도 중국을 강조했다.
▲서로의 치부도 거침없이 밝히다
라이벌이라고 하면 서로를 견제하는 게 보통이다. 자신의 약점이 라이벌에게 공개되면 승부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3인방은 서로의 약점을 대놓고 지적하며 공생의 길을 걷고 있다. 만득이(민석), 서뺑이(현덕), 영구(영식)라고 서로의 별명을 부르는 것처럼 치부 공개도 편하게 진행됐다.
지난 3월 말 세계선수권 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한 정영식은 "민석이는 디펜스를 할 때 떨어지는 경향이 있고, 백드라이브가 크로스 코스로만 온다. 현덕이는 리시브가 단순하고 잔플레이가 안 좋은 게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서현덕이 "영식이는 공격력이 약해 위협적이지 않다"고 말하자 세 명은 서로를 보며 한바탕 웃었다. 이어 서현덕은 "민석이는 정신력이 약한 것 같다"고 밝히며 눈치를 살폈다.
라이벌들에게 핀잔을 들은 김민석은 "현덕이는 디펜스는 강한데 한방이 없다. 영식이는 떨어져서 할 때는 연결성이 부족하고 역시 한방이 없는 것 같다"며 '이에는 이'로 맞섰다.
▲2012 런던올림픽은 우리가 접수한다
김택수 남자대표팀 감독도 경쟁을 통해 엎치락뒤치락하며 발전하고 있는 이들의 성장세에 미소가 가득하다. 김 감독은 "각자의 장점이 뚜렷하기 때문에 누가 앞선다고 말할 수 없다. 분명한 건 이들이 지금처럼 꾸준히 성장해야만 만리장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3인방의 목표는 '런던올림픽의 주인공'. 이들은 평소에도 '올림픽에서 꼭 함께 메달을 따자'고 서로를 격려하며 꿈을 향해 정진하고 있다. 겁 없는 10대답게 3인방은 한 목소리로 "메달을 따서 김연아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서현덕은 "김연아를 넘어서야 되지 않겠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실업무대에 발을 내디딜 때만 해도 3인방의 '2012년 런던올림픽 동반 메달'은 멀어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국제대회를 치르면 치를수록 올림픽 동반 메달의 꿈도 가까워지는 것 같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3인방은 개별 고백 시간에도 파이팅 메시지를 서로에게 보냈다. 이들의 바람은 하나였다. "똑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만큼 건강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노력하자. 항상 응원할게."
김두용 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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