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 붕~" 천안함 침몰 20일째인 15일 오전8시 44분. 동양 최대의 수송함인 독도함을 비롯해 함미 인양작업 해역 부근에 있던 수척의 군함들이 일제히 15초간 기적소리를 힘차게 울리고 있었다. 대한민국 해군의 위용을 자랑하던 장병들이 무사 귀환하리란 믿음을 담아 생환을 기원하는 외침이었다. 햇살을 머금은 푸른 바다는 아름다웠고 바닷바람은 모처럼 봄바람처럼 싱그러웠다. 민간인양업체 관계자는 "오늘 날씨가 인양작업을 시작한 이후 가장 좋은 것 같다"며 기적을 부르는 주문을 외우기라도 하듯 밝은 표정으로 되뇌었다.
오전 9시. 2,200톤급 크레인선 '삼아 2200호'는 백령도 장촌포구에서 남쪽으로 1.4㎞ 떨어진 바다 속에 내려앉은 함미의 허리에 두른 인양체인 세 가닥을 천천히 조심스레 감아 올렸다. 11분뒤 드디어 함미 가장 윗부분인 사격통제 레이더실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40mm 부포와 하푼 미사일, 포탑에 이어 갑판까지 차례로 물 밖으로 떠올랐다. 함미 무게를 줄이기 위해 자연배수와 펌프를 이용한 인공 배수작업에 이어 함미 끝에 안전망을 추가하는 작업이 진행되던 오전 10시30분. 해군 해난구조대(SSU) 요원들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낸 함미로 들어갔다. 선체 상태 및 실종자 수색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운명의 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배수를 끝낸 함미는 낮 12시12분께 완전히 물 밖으로 나왔다. 대기 중이던 3,000톤급 바지선도 함미 쪽으로 이동했다. 함미를 바지선으로 옮기는 작업이 진행되는 내내 긴장의 연속이었다.
바지선에 설치한 거치대에 1m 이상 오차도 없이 955톤의 함미를 탑재하는 작업은 40분이나 걸릴 정도로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함미가 바지선에 내려진 것은 오후 1시12분. 안도할 새도 없이 함미를 안착시킨 거치대 10여개가 무게에 눌려 파손됐다. 불길한 징조였을까. 이와 때를 같이 해 함내 수색에서 승조원 시신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겉보기로는 움직임을 감지할 수 없었다.
60여명 군 관계자와 인양업체 직원들이 파손된 거치대 보수작업을 하는 사이 함미는 힘없이 다시 들어 올려졌다. 세 가닥의 쇠사슬에 매달린 함미는 먼 발치에서 보기에도 처참했다. 다만 그나마 온전한 함미 뒷부분에는 천안함 고유번호 '772'와 '천안'이란 이름이 선명했다. 스크류도 멀쩡했고 좌현도, 갑판 위 난간도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취재지원선인 '인천517호'를 타고 270m 거리에서 망원경을 통해 직접 본 우현(함미에서 함수를 바라볼 때 오른쪽 방향)의 절단면은 그물망에 덮여 있었지만 여기저기 찢어지고 뜯겨진 흠집투성이였다. 매우 강한 충격이 있었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만큼 깊은 생채기가 나 있었다. 우현 쪽도 여기저기 긁힌 곳이 많았다. 우현과 절단면이 만나는 곳은 마치 무딘 칼로 베어낸 듯 톱니 모양으로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10여명의 군 관계자들이 사진을 촬영하며 분주히 절단면을 확인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우현 길이(30m)는 겉보기로도 좌현(36m)보다 훨씬 짧았고 너덜너덜해져 있어 오른쪽에서 큰 타격 내지 충격이 있었음을 말해 주는 듯 했다.
이후 거치대 보수작업과 함께 실종자 수색이 동시 진행되면서 긴장은 더욱 고조됐다. 오후 3시55분 선체 확인작업을 벌이던 SSU 및 특수전여단(UDT) 요원들의 부산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40여 요원들이 선체 내부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진행하면서 승조원들의 시신이 속속 발견되기 시작했다. 이어 과학수사팀 요원들이 서대호 방일민 하사 등 승조원들의 사망 사실과 신원을 확인했다. 이후 속절없이 수병들의 유해가 쏟아져 나오면서 백령도 앞바다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수습된 시신이 독도함에서 다시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로 밤 늦게까지 쉴 새 없이 옮겨지는 과정에 시신을 이송하는 헬기는 장송곡을 울리듯 굉음을 바다 위로 토해내고 있었다. 비통한 하루였다.
백령도=이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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