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천안함 함미 인양/ 가족들의 아름다운 결단 '희생의 숭고함' 일깨웠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천안함 함미 인양/ 가족들의 아름다운 결단 '희생의 숭고함' 일깨웠다

입력
2010.04.15 13:13
0 0

천안함 함미(艦尾)가 침몰 20일 만인 15일 인양되면서 인양에 한 달은 족히 걸릴 것이라는 당초 예상이 깨졌다. 군이 실종자 수색 및 구조 작업을 중단하고 인양 작업에 집중한 날부터 따지면 함미 인양까지는 11일 밖에 걸리지 않은 셈이다. 이처럼 신속한 인양의 배경에는 고비를 맞을 때마다 내려진 가족들의 눈물겨운 결단이 있었다.

목숨 앗아가는 수색 작업 중단

3일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 기자실. 이정국 실종자가족협의회 대표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들어섰다. 마이크를 잡은 손이 가늘게 떨리면서 그는 말을 시작했다. 그는 가족협의회를 통해 "군의 수색 작업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구조를 시도하다 발생할 더 이상의 희생을 원치 않는다"며 군에 실종자 구조 및 수색 작업 중단을 요청했다.

이런 결단에는 지난달 30일 실종자 구조 작업에 참여한 수중폭파팀(UDT) 소속 한주호 준위의 순직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후 수중 구조작업에 투입됐던 잠수대원들로부터 수심 45m에서의 구조작업 여건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은 뒤 전격적인 수색중단 결정이 내려졌다. 이때 가족들은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에 어느 정도 희망을 갖고 있었다.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사생환만을 간절히 기다렸던 가족들 입장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가족협의회는 당시 "(실종자 생존 가능성에) 기대를 버린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워 현 시점에서 중단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결단으로 군은 수색 및 구조작업을 바로 인양으로 전환했다.

희생자 가족들의 이 같은 결단은 이후 결정적인 고비 때마다 이어졌다. 단장의 아픔을 억누르며 수습의 통로를 연 것이다. 3일 함미에서 발견된 남기훈 상사가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오면서 가족들은 실낱 같은 희망을 접었다. 가족들은 애끓는 심정을 뒤로한 채 "애꿎은 잠수사들이 또다시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처음에 "내 아들만은 살려야 한다."고 통곡하며 반대한 20여 실종 장병 가족들도 결국 마음을 돌렸다. 가족들은 찢어지는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인명구조작업을 중단하고 인양작업에 돌입해 달라."고 군에 요청했다.

예인 허락한 가슴 저미는 결단

군과 인양업체가 12일 천안함 함미를 침몰 장소에서 백령도 동남쪽 4.6㎞ 지점으로 이동시킨 것도 가족들의 동의가 있어 가능했다. 이날 기상이 악화될 것이라는 예보가 나오자 민간 인양업체 직원들은 "크레인이 피항을 해야 하는데 이미 함미와 연결해 놓은 쇠사슬이 있어 쇠사슬을 끊거나 아니면 함미를 이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종자 및 희생자 46명의 가족대표가 곧바로 전체회의를 열어 '함미 이동'으로 의견을 모으는데 채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일부 가족들이 유실과 안전 등 문제를 지적했지만 인양업체로부터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통보를 받은 상태에서 시신 유실 등이 발생하면 이 부분은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가족협의회측은 "이런 결정이 가족 내부에서 최선의 결정이라는 현실에 가족 모두 안타까워 한다"며 "힘든 결정이었는데 '논란, 갈등이 있었다'는 등과 같은 뒷말로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수심 45m 해저에 가라앉아 있던 함미가 수심 25m 지역으로 옮겨지면서 인양 작업에 가속도가 붙었다. 잠수사들의 수중 작업시간이 길어지고, 잠수사들의 사고예방 효과도 컸다.

실종자 가족들은 14일 또 한번의 결단을 내렸다. 가족들은 "폭발지점으로 추정되는 절단면 부근에 있던 장병들의 귀환은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피폭지점에 있던 미발견 실종장병을 '산화자'(散華者)로 처리키로 결정했다. 특히 실종자 가운데 일부를 찾지 못하더라도 군에 추가적인 수색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함미 이동 결정에 이어 이틀 만에 잠수사들의 안전을 위해 또다시 어려운 결정을 내린 셈이다. 국민들은 가족을 잃은 아픔 속에서도 타인을 배려하는 희생자 가족들의 결단에 무한한 경의를 표하는 이유다.

가족들의 고뇌에 찬 결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가족들은 함미 인양이 임박한 13일에는 실종 장병의 장례 절차를 논의할 '실종 장병 장례위원회'를 꾸렸다. 이들은 함체가 인양되더라도 많게는 10명 이상의 주검을 찾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최종 실종자는 산화한 것으로 처리하고 장례 절차를 진행한다'고 결정해 해군 등의 부담을 크게 덜어줬다.

김창훈 기자 ch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