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해 준 개성 장 굴비… 70년을 해도 그 맛은 안 나"
"옛날에 우리 시어머님이 속이 안 좋으셨어. 그래 나는 무얼 해드려야 하나 생각하다가 흑임자가 속에 좋다는 말이 생각난 거야. 그래서 그걸로 죽을 쑤어 드렸더니 한 달 넘게 그것을 드시고는 속병이 가라앉으셨지. 그 후로는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흑임자죽을 자주 상에 내고는 해요."
최상옥 할머님의 첫 마디는 이렇게 다소 긴 음식 설명으로 시작되었다. 바로 일 분 전에 내 이름 석 자를 인사드렸고, 할머님과 마주 상에 앉았고, 흑임자죽이 상에 나왔고, 죽을 한 술 뜨는 찰라 첫 음식으로 흑임자죽을 주시는 이유를 설명해 주신 것이다.
음식 하는 사람들은 대게 그렇다. 하루 종일 음식만 생각하니까 사람과의 소통도 대게는 음식으로부터 출발한다. 김치 한 조각, 죽 한 술을 상에 올려도 왜 올렸으며, 어떻게 먹는 것인지를 상대방이 알고 먹어 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서 더 그럴 것이다.
내 앞에 앉아 계신 최상옥 할머님은 대한민국 최고의 한정식 브랜드 가운데 하나인 '용수산'을 만드신 장본인이다. 1928년에 개성에서 태어나신 할머님은 그러니까 '창업주'라는 존칭보다 요즘 말로 '셰프'가 더 잘 어울리는 분이다.
일곱 남매의 셋째 딸로 태어나신 할머님은 '버릴 것 하나 없는' 셋째 딸 노릇을 톡톡히 하며 어릴 적부터 엄마 살림을 도맡아 거드는 야무진 딸내미였다고 한다. 종가집 살림을 이끄는 엄마는 최 할머님을 가장 예뻐하셨다고.
"우리 엄마는 맨날 나를 '상딸'이라 불렀어. 내가 일을 제일 잘 거드니까"라고 할머님은 회상하신다. 칠 남매 가운데 아들이 둘, 딸이 다섯이면 일단 아들들은 가사에서 열외였을 테고, 딸 다섯 가운데 큰언니는 큰언니라서 막내는 막내라서 봐주다 보면 가장 손재주 야물게 크는 아이는 둘째 딸 아님, 셋째 딸일 확률이 높다는 것을 나의 외갓집을 봐도 알 수 있다. 암튼 엄마 사랑을 듬뿍 받고 종갓집 며느리인 엄마 손 맛을 그대로 배운 최 할머님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실 때마다 "개성이 참 살기 좋은 곳이었어요"라며 고향 칭찬을 이어가신다.
할머님 기억에 남아있는 개성, 그곳은 나도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도시다. 화려함으로 꼽히는 문화를 자랑했던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은 그 음식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지리적 위치에 있었다. '개성상인'이라는 말이 여즉(아직까지) 쓰일 정도로 세상 좋은 물건들을 다 갖고 돌아오는 상인들이 있었고, 산나물로부터 어패류와 육류까지 식재료가 그렇게 풍부할 수 없었다는데.
할머님이 회상하시는 '조기 들이는 날'만 봐도 그렇다. 굴비를 가마니로 사다가 마당에 풀고, 세 더미로 나누었다는데. 가장 씨알이 굵은 것은 장 굴비, 중간 것은 말려서 구워 먹는 굴비, 가장 자잘한 것들은 젓갈을 담그는 용도로 쓰였다고 하니 먹는 생활이 얼마나 풍요로웠을지 짐작하고도 남겠다.
그 가운데 할머님이 생애 최고의 맛으로 꼽으시는 메뉴가 바로 '장 굴비'다. 상태가 제일 좋은 놈을 골라 비늘과 내장을 다듬고, 생선을 달래듯 조심스러운 칼끝으로 반을 저며 가른다. 그리고 양념간장을 바르는 것인데, 그렇게 반복해서 켜켜이 쌓인 굴비를 양념이 밴 다음 채반에 널어 꾸덕해 지도록 두면 일단은 준비 끝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과정은 아직 남아있으니, 바로 석쇠에 굽는 일이다. 질 좋은 생선을 딱 맞게 말려 구우면 석쇠 위에 올려도 기름이 사악 배나오면서 붙지 않고 잘 익는다는데, 그렇게 익힌 장 굴비는 냄새만 맡아도 행복한 맛이었단다.
"엄마가 해주던 대로 해봐도 옛날에 먹던 장 굴비랑은 맛이 달라." 칠십 년 요리 인생 할머님의 말씀에 이제 요리를 시작한 지 십 년이 겨우 넘은 나도 신이 나서 맞장구를 친다. 일단 굴비가 다르다, 아니 생선이 살던 바닷물의 온도와 환경이 다르니 그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 장맛이 달라졌다, 굴비를 말려주던 햇빛과 바람도 달라졌다는 둥 초보 주제에 나는 불평만 쏟아낸다. 하지만 모든 것이 사실인 것을!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구아바나 파파야 같은 열대 과일이 자라고, 한류성 어종인 명태만 해도 수온이 높아지면서 수확량이 줄어들어 더 이상 '서민의 생선'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는 등의 뉴스는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러니 그 옛날 먹던 식재료로 그 옛날 불던 바람에 말려 먹던 맛을 재현하기란 꿈같은 일인 것이다. 그래도 최 할머님은 꿈을 놓지 않으신다. 귀하고 우아한 담음새와 식재료 본래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개성음식의 재현을 오늘도 내일도 손수 실천 중이시니. 재료의 맛만 살도록 요리하려면 자연히 부각되는 것이 '간장'이다. 담근 지 얼마 안 되는 싱거운 장을 끓여서 맛을 낸다든지 묵은 장을 약처럼 먹는다든지, 담근 방법과 익힌 방법에 따라 맛과 쓰임새를 달리 하는 것이 개성 음식의 중요한 포인트다.
장을 제대로 쓰면 '개성 무찜'같은, 단순하지만 입 속을 풍요롭게 하는 맛이 만들어진다. 소, 돼지, 닭을 다 넣고 밤, 은행, 대추, 버섯을 넣고 간장에 재웠다가 쪄내는 '무찜'은 개성의 잔칫날마다 빠지지 않던 메뉴다. 또, 잔치마다 빠질 일 없던 메뉴가 떡이었으니 넉넉한 집마다 돌리는 절편이 이웃들의 배를 부르게 했으리라. 넉넉한 햇살과 바람이 넉넉한 맛을 만들고, 넉넉한 마음은 넉넉한 세상을 만든다. 개성음식 하나로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신만의 브랜드를 창업하고 30년 세월을 이끌어가고 있는 최상옥 할머님이 나 같은 풋내기에게 일러주신 인생의 양념은 바로 '마음'인 것이다.
■ 용수산 청포묵 무침
재료
청포묵, 말린 표고버섯, 쇠고기, 오이, 숙주, 김가루, 참기름, 깨소금, 소금, 다진 마늘, 파
1. 청포묵은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굳힌 다음 꺼내서 최대한 얇게 채를 썬다.
2. 1을 끓는 물에 데쳐서 채반에 펼쳐 놓고 선풍기 같은 강한 바람으로 식힌다.
3. 2를 참기름, 깨소금, 소금으로 무친다.
4. 부재료를 준비한다.
-오이; 속을 빼고 잘라 소금에 절인 다음 물기를 짜고 볶은 후 강한 바람으로 식힌다.
-숙주; 끓는 물에 살짝 데치고 찬물에 헹군 다음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한다.
-표고버섯; 불린 다음 얇게 저며 채 썰고 간장, 물, 설탕에 식초를 약간 넣고 조린다.
-쇠고기; 가늘게 채썰어 갖은 양념에 볶아 둔다.
5. 준비된 모든 재료를 한 데 섞고 간을 맞춘 다음 김 가루를 살짝 뿌린다.
■ 상어지느러미 딤섬
희고 얇은 반죽 테두리의 끄트머리를 살짝 집어 모아 야무지게 묶은 복주머니. 그 세심하고 정성스런 손길이 떠올라 차마 묶은 부분을 흩트리지 못했다. 그저 젓가락으로 복주머니 아래쪽을 살짝 건드렸다. 작고 옴폭한 접시 위로 맑은 육수가 수줍게 흘러나왔다. 갓 나온 육수는 따끈하고 개운했다.
육수를 잃은 복주머니는 연한 속살을 드러내 보이며 스르르 긴장을 풀었다. 육수의 맛이 채 가시기 전 젓가락 사이에 복주머니를 살포시 얹고 미각을 자극했다. 밀가루 피와 속살이 부드럽게 섞이며 그제서야 본연의 맛을 알렸다.
샤오롱바오다.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딤섬의 한 종류. 모양은 만두와 닮았지만 한 입에 들어갈 만큼 작고 피도 좀 더 얇다.
샤오롱바오만 보고 단순히 중국식 만두 정도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딤섬은 색다른 모양이 꽤 많다. 샤오롱바오처럼 한자 표기에 '포(包)'자가 들어간 건 주머니처럼 둥글고, '교(餃)'자가 들어간 건 투명한 반달형, '매(賣)'자가 들어간 건 윗부분이 뚫려 속이 들여다보인다. 이름만으로 대충 어떤 모양이겠구나 유추하는 것도 딤섬 먹는데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피와 속 재료까지 치면 딤섬 종류는 100가지가 넘는다. 만두나 라비올리(이탈리아식 만두)가 주로 밀가루 피를 쓰는데 비해 딤섬 피는 감자와 옥수수 전분으로도 만든다. 속살이 들여다보일 만큼 투명한 피를 만들 땐 옥수수 전분을, 점성을 줄이고 싶을 땐 감자 전분을 좀 더 많이 섞으면 된다. 밀가루 피로 만든 딤섬은 대나무 바구니에 넣고 보통 5분, 전분 피는 3분 정도 찐다. 밀가루 반죽을 발효시켜 카스텔라처럼 뽀송뽀송하게 만드는 피도 딤섬만의 독특한 방식이다.
딤섬을 처음 먹기 시작한 건 약 3,000년 전 중국 남부 광둥 지방부터다. 간단한 아침이나 점심 식사 아니면 간식으로 차와 함께 먹었다. 홍콩으로 건너간 뒤엔 크기가 아기자기하게 작아지고 속에 돼지고기 쇠고기 말고 여러 가지 해산물도 들어가면서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더욱 다양해졌다. 한국에 소개된 건 1980년대 후반. 당시 그랜드하얏트서울호텔 중식당이 국내에 처음으로 딤섬 뷔페를 선보였다.
첫 딤섬 뷔페에 참여했던 전극인 중식당 주방장은 "딤섬은 모양과 재료에 따라 디테일한 손기술이 많이 필요한 어려운 요리"라며 "기술을 익히는 사람도 많지 않고 재료 단가도 높아 최근 딤섬을 직접 만드는 식당이 크게 줄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딤섬을 하더라도 냉동제품을 해동해 쪄내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딤섬을 한자로 쓰면 '점심(点心)'.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의미다. 딤섬을 빚는데 쏟아 부은 정성이 마음에 오랫동안 점처럼 남는다는 뜻으로 추측된다. 이달 말까지 그랜드하얏트서울호텔의 더 차이니스 레스토랑을 찾으면 손으로 직접 빚은 딤섬을 맛볼 수 있다. 02)799-8163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atgamsa@gmail.com
사진=임우석 imwoo5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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