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신혼 생활을 꿈꾸던 예비 신랑, 동생들의 대학 공부를 위해 입대한 맏형, 바다를 좋아했던 조선해양공학도, 차디찬 바닷속에서 생일을 맞은 병사들…. 그들은 대한민국 최전선을 지키는 해군이기에 앞서 사랑하는 아빠이자 따스한 마음을 지닌 착한 아들이었다.
천안함 침몰 20일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장병들. 못다 핀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남아 있는 자들의 가슴을 저미게 했다.
주검으로 돌아온 예비 신랑
강준 중사는 다음달 9일 결혼할 예정이었다. 신부는 경남 진해에서 해군 부사관으로 함께 근무했던 여군 동료. 두 사람의 사랑은 부대 안팎의 시샘을 받을 정도로 애틋했다. 강 중사는 기혼 장병에게 제공되는 해군 아파트를 얻기 위해 예비 부인과 미리 혼인신고까지 마친 상태였다. 약혼녀와 강 중사의 두 형은 끝까지 희망을 끈을 놓지 않고 귀환을 기도했으나, 그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가정 형편 때문에" 소문난 효자들
방일민 하사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해군에 자원 입대했다. 고향인 김포시 양촌면 이웃 주민들은 "장남이라 어려운 집안에 보탬이 되기 위해 스스로 입대했다. 아마 부모 가슴은 찢어질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방 하사 가족의 집은 김포시의 학운산업단지 조성계획에 따라 이주해야 하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아직 대책을 세우지 못한 상태다.
심영빈 하사도 부모의 경제적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대학 1학년을 다니다 중퇴하고 입대했다. 심 하사의 사촌형 심영식씨는 "지난해 전역하려다 가정형편 때문에 장기복무를 신청했다. 고속정을 타다가 최근 천안함으로 옮기게 돼 큰 배라 안전할 줄 알았는데…"하며 말을 맺지 못했다.
문영욱 하사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며 생활했다. 그러다 2007년 9월 뇌졸중으로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학비를 벌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해군 단기 부사관을 택했다. 문 하사의 외삼촌은 "가정형편 때문에 입대했는데 1년 만에 이런 참사를 당했다"며 가슴을 쳤다.
7년 전 어머니를 잃은 김선명 상병도 홀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지극한 효자였다. 휴가를 나가서도 아버지의 건축일을 도울 만큼 성실한 청년이었다. 김 상병의 집 이웃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집안일 돕는 것을 더 좋아하던 착한 아이였다"고 전했다.
백일된 딸 안아주지 못한 아버지
지난해 결혼한 최정환 중사는 올해 1월 첫 딸을 얻었다. 그러나 군 생활로 거칠어진 손과 큰 체격 때문에 혹시 딸이 다칠까 염려해 최 중사는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했다. 다정스런 아빠였지만 해상 근무 탓에 딸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최 중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의 재롱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됐다. 최 중사의 가족들은 "딸이 크는 것을 보고 싶어서 천안함을 마지막으로 함상 근무를 접고 육상근무를 자원한 상태였다"며 비통해 했다.
'남자라면 해병대' 진짜 사나이
이날 처음 시신으로 확인된 서대호 하사는 평소 "남자라면 해병대를 가야 한다"며 해군에 입대한 늠름한 청년이었다. 생전에는 빼어난 노래 솜씨로 함내의 분위기를 띄웠던 천안함의 '대표 가수'이기도 했다. 부모를 챙기는 정성은 끔직할 정도였다. 적은 월급을 쪼개 부모의 생일과 결혼기념일 선물을 챙기는 세심한 남자였다. 서 하사의 어머니 안민자씨는 "원래 타기로 돼 있던 대천함이 출동 나가게 되면서 천안함을 탔는데 이런 일을 당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바다에서 생 마친 해군가족의 아들
지난해 4월 입대한 김선호 일병은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해군 부사관 출신이어서 어릴 때부터 바다와 친숙했다. 그런 집안 분위기는 그를 자연스럽게 해군으로 이끌었다. 김 일병의 사촌들 대부분도 해군 사병으로 제대한 해군가족이다. 김 일병의 어머니 김미영씨는 "말썽 한번 부리지 않은 착한 아들이었다. 사고 전날 밤에도 나와 아버지, 누나에게 일일이 전화를 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됐다"며 눈물을 쏟았다.
가족을 그리워했던 정 많은 가장
1일 김태석 상사와 함께 상사로 진급한 문규석 상사는 출동을 나갈 때면 가족 사진을 보며 그리워했던 정 많은 가장이었다. 초등학교 2,4학년 두 딸을 둔 문 상사는 침몰 당일 사고 5분전 딸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통화를 하지 못했다. 문 상사의 부인은 "얼마나 딸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을 지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며 "그 전화가 마지막이 되다니 믿겨지지 않는다"고 애통해 했다.
전역이 코앞이었는데
이상민(88년생) 병장은 다음달 전역할 예정이었다. 그는 미니 홈피에 "복잡했던 두 해가 지나갔다. 먼 훗날은 멀리에 있을 줄 알았는데…"라는 글을 남겨 전역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드러냈다. 이 병장의 여동생 이 모양은 "오빠를 잊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이용상 병장도 5월 제대를 앞두고 있었다. 성격이 쾌활한 그는 '깜둥이 생활반장'으로 불리며 병사들의 인기를 독차지 했었다. 그와 절친했던 생존자 김효형 하사는 이 병장의 홈피에 "힘내고 있어, 용상아!"라며 무사귀환을 기원했지만 싸늘한 친구의 시신을 맞이해야 했다.
바다를 좋아했던 해양공학도
조지훈 일병은 인하공업전문대 선박해양시스템과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지난해 입대했다. 배와 바다에 관련된 공부를 해 해군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조 일병의 어머니 정애정씨는 "지훈이는 배를 타는 것을 좋아했다"며 "평소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보내곤 했는데 사고전인 지난달 13일에도 '잘 계시냐'며 포토 메일을 보내왔다"고 말문을 잊지 못했다.
금지옥엽 외아들
위로 누나 둘이 있는 이상준 하사는 부모가 엄청난 공을 들인 끝에 낳은 외아들이다. 이 하사의 아버지 이용우씨는 시신이 수습됐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 앉으며 "얼마나 귀한 자식이었는데 이렇게 가는 게 말이 되는가"며 울부짖었다.
강현구 병장도 외아들이다. 강 병장의 작은 아버지 강성명씨는 "집안이 초상집 분위기"라며 "외아들이어서 집안의 충격이 더 크다"고 했다.
차가운 바다 속에서 맞은 생일
신선준 중사는 2일 서른 번째 생일을 차디찬 바다 속에서 맞았다. 아버지 신국현씨는 이날 평택 2함대 사령부 내 식당에서 아들 몫의 식판을 하나 더 받아 들고 말없이 아들의 생일을 축하했다. 식판 위에는 아들의 위한 미역국이 담겨 있었다. 결국 그것은 신 중사가 받은 마지막 생일상이 됐다.
나현민 일병도 11일이 스무 번째 생일이었다. 이날도 실종자 가족들의 아침 식사에는 미역국이올라왔다. 나 일병의 아버지 나재봉씨는 실종자 가족들의 임시 숙소 방마다 케이크를 전달했다. "생일 케이크를 나눠 먹어야 아들이 좋아할 것 같다"던 나씨는 "현민이가 대학 입시에서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지 못해 상심이 컸지만 군 복무를 마친 뒤 공부해 수학교수가 되겠다고 했었다"며 비통해 했다.
여자친구와의 마지막 통화
사고가 있던 3월 26일 저녁 손수민 하사는 여자친구인 김모씨와 통화 중이었다. 김씨는 "오빠와 전화로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뚝 통화가 끊겼다"고 말했다.
김씨는 "항상 그랬듯 먼저 다시 전화를 걸어올 줄 알았는데 결국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30분 뒤 천안함 침몰 소식이 전해졌다"고 울먹였다.
동생 뒷바라지 위해 입대한 맏형
고3이던 15년 전 사고로 부모를 잃은 김종헌 중사는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가장 역할을 해야 했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집안을 이끌기 위해 결국 군을 택했다. 두 동생의 대학 뒷바라지 하던 김 중사는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동생들의 졸업식 장면을 지켜볼 수 없게 됐다. 김 중사의 작은 아버지 김호중씨는 "동생들이 대학을 마칠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주려고 군생활을 하며 그토록 애를 썼는데"라며 울먹였다.
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한준규 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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