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가 울렸다. "예, '피스 오브 마인드' 북 카페입니다. 예약이요? 모두 몇 분이시죠?" 전화를 끊으니 나가는 손님이 기다리고 섰다. 계산을 마칠 즈음 "여기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잰 걸음으로 안쪽 테이블에 가 얼른 주문을 받았다.
인터뷰 내내 그는 바빴다. 물론 과거에도 바빴다. 하지만 이유가 달라졌다. 예전엔 직원에게 지시를 내리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지만 지금은 손님 요청을 들어주느라 분주하다. 김종헌(63) 전 남영비비안 사장이 설계한 제2의 인생은 그렇게 여전히 바빴다.
책벌레 습관이 만든 두 번째 인생
테이블 사이사이 놓인 작은 책장에 소설이나 잡지 몇 권 꽂혀 있는 정도의 북 카페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경춘선 남춘천역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인 석사동 피스 오브 마인드에 들어서면 일단 특유의 예스러운 기품에 압도된다. 벽을 덮다시피 한 서예 작품들과 빛 바랜 희귀 고서들, 사오십 년은 족히 넘었을 법한 손떼 묻은 물품들에서 쉽사리 눈을 뗄 수 없다.
"한국의 10대 미서(美書)로 꼽히는 책 중 <오륜행실도> 와 <이륜행실도> <부모은준경> 등 3종이 여기 있어요. 젊을 때 전국을 돌아다니며 구했죠. 특히 1700년대에 금속활자본으로 단 10질(1질 당 4권)만 찍은 <오륜행실도> 는 20년 전 1질이 1,000만원을 호가했을 정도로 귀한 책입니다." 오륜행실도> 부모은준경> 이륜행실도> 오륜행실도>
초기 서양철학 교재와 최초 국사교과서 등 100년 넘은 책도 수두룩했다. 책은 총 1만5,000권, 미술품은 1,000점, 음반은 3,000장에 달한다. 두 달 전 강원대 사학과가 이곳에 소장된 자료의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다. 북 카페가 학술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중학생 때부터 책을 엄청 좋아했어요. 그때부터 버리지 않고 모아둔 덕에 살림이 이만큼 늘었죠. 문학이랑 철학에 관심이 많아 서예도 배우고 독학으로 한학도 공부했어요. 대학도 철학과로 진학했고, 동양의 고서 읽을 욕심에 중국어 일본어도 익혔죠."
어지간한 책벌레였던 모양이다. 학창시절 습관은 1973년 남영비비안에 입사한 뒤에도 이어졌다. 1980년대 독일 지사장으로 일하면서 유럽에서 처음 북 카페를 접한 김 전 사장은 본격적으로 은퇴 이후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외국 나갈 때마다 근처 책방과 북 카페는 꼭 찾아 다녔다.
"90년대 후반 뉴욕 현지법인 회장으로 있을 때였죠. 맨해튼에서 마음에 드는 북 카페를 발견했어요. 아래위층 모두 기증받은 고서로 가득했죠. 자원봉사자들이 책 분류하고 빌려주는 일을 맡고 수익은 자선사업에 쓰더군요. 햄버거와 음료를 팔면서 시 낭송회 같은 문화모임도 했어요."
이 컨셉트에 햄버거와 음료 대신 고급 스테이크와 유기농 스파게티, 허브 빵을 도입해 강원도 홍천 산골에 그만의 베이커리 겸 북 카페를 차린 건 2003년. 독일에서 제빵 기술을 배워 지금은 전통 떡까지 마스터한 아내 이형숙(58)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외래교수의 역할이 컸다.
손님이 찾아오기 쉽고 식자재 운반도 원활하게 하려고 3년여 전 카페를 춘천으로 옮겨왔다. 지금은 지역주민은 물론 그의 책을 읽은 독자와 문화에 관심 많은 유명인사까지, 소문을 듣고 오는 발길이 부쩍 늘었다. 월 매출 약 3,000만원. 이 돈은 귀한 그림과 서예 작품을 사는데 투자한다.
재테크보다 중요한 것
"2000년 사직서를 냈을 때 남들이 미쳤다고 했어요. 억대 연봉에, 사외이사나 고문 같은 자리로도 갈 수 있던 상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나이도 먹어가는데 계속 기업에서 전쟁 치르듯 살아야 하나 싶었죠. 어릴 때부터 추구했던 꿈을 늦기 전에 이뤄야겠다는 마음이 더 절실했어요."
그는 사직서에도 단순히 '일신 상의 이유'가 아니라 '베이커리 겸 북 카페를 하기 위해' 퇴사한다고 적었다. 구체적인 목표와 오랜 계획에서 나온 자신감이었다.
김 전 사장이 퇴사할 당시는 회사에서 2세 경영이 막 시작되려던 시점이었다. 새로운 경영진은 당연히 그보다 어렸다. 회식 아니면 접대가 반복된 일상 탓에 건강도 급속히 나빠져 치주염과 고혈압을 얻었다. 회사와 함께 스스로도 크게 성장했지만 그것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었다.
"남자 나이 40쯤 넘어가면 누구나 하게 되는 고민이죠. 정말 괴로운 시기에요. 20세가 사춘기라면 40세는 '사추기(思秋期)'라고 할까요. 그때를 잘 넘기려면 일찍부터 꿈을 키워야 합니다. 정말 좋아하는 삶의 모습 말이죠. 단 막연하게 말고 아주 구체적으로요."
노후나 은퇴 이후 삶을 준비하는 수단으로 재테크를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돈보다는 꿈이 우선이라는 게 김 전 사장의 신념이다. 김 전 사장 부부는 둘 다 서울 토박이다. 서울서 살던 집을 덜컥 팔고 아무 연고도 없는 강원도에 내려와 생전 처음인 카페 운영을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하다. 부부의 오랜 꿈이었기 때문이다.
●김종헌의 퇴직 후 시간 쓰는 방법
아침에 북 카페로 출근한 김종헌 전 남영비비안 사장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홀 청소와 시장 보기. 10시쯤 아침 겸 점심식사까지 마치고 나면 슬슬 손님이 들기 시작한다. 두어 시까진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고 계산을 하느라 잠시 앉을 틈도 없다.
3시쯤 여유 있게 오후 식사를 한다. 카페 운영에 필요한 은행 업무나 자재 구매를 끝내면 김 전 사장 혼자만의 시간. 주로 자신만이 가진 콘텐츠를 다듬는데 보낸다. 인터넷 블로그를 관리하고 인생 설계나 서예 고서 등에 대한 글을 써내려 가다 보면 어느덧 저녁 손님을 맞을 때가 된다.
주말 일정은 좀 색다르다. 유럽과 미국에서 근무하며 익힌 실무영어가 점점 잊혀지는 게 아까워 학생이나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무료 영어강좌를 개설했다. 책상머리가 아니라 현지에서 직접 체득한 영어니만큼 웬만한 학원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강의다.
사실 종업원이나 경영자 역할만 하면 카페 운영에 별 문제 없다. 그래도 작가와 강사 역할까지 자처하고 나섰다. 김 전 사장은 "기왕이면 사회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도 활용하며 사는 게 더 의미 있겠다 싶어 부러 다양한 기회를 만든다"며 "시간은 쓰기 나름"이라고 말했다.
평생 직장에서 바쁘게 일하던 사람이 갑자기 한가하게 지내다 보면 자칫 우울해지거나 무력해질 수 있다. 이런 위기를 김 전 사장은 부지런한 사회활동과 꼼꼼한 시간관리로 슬기롭게 비켜간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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