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캘리포니아 태양… 싱그런 초록… 황홀한 한잔의 추억
햇빛 가득한 푸른 언덕과 길게 줄지어 늘어선 포도나무의 도열. 와이너리의 푸른 풍경 만으로 가슴엔 벌써 와인향이 짙게 번졌다.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ㆍ소노마밸리로 떠난 와이너리 투어길이다. 근사한 와이너리에 들려 그들이 내놓은 최고급 와인을 시음하고 그에 걸맞은 음식을 곁들이는 황홀한 미각의 축제를 펼치는 여행이다. 눈에선 와이너리의 풍경이 항상 가득했고 입에선 와인의 향이 떠나질 않았다.
와인은 제각기 성격을 갖는데 그 성격은 포도의 종자와 기후, 토양, 주변의 미세기후 등에 좌우된다. 한마디로 테루아(terroirㆍ재배법을 포함해 포도가 자라는 제반 조건)가 와인의 성격을 지배하는 것이다. 나파밸리, 소노마밸리의 수많은 와이너리들은 각기 다른 테루아의 성격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을 통해 손님을 맞고 있다. 그 와이너리들을 하나씩 찾아 나섰다. 매번 새 애인을 만나는 것처럼 설레는 걸음이었다.
로버트 몬다비
지금의 캘리포니아 와인을 있게 한 주인공이 바로 로버트 몬다비(2008년 작고)다. 값싼 벌크 와인만 넘쳐나던 캘리포니아에 1966년 자신의 양조장을 세워 나파밸리를 세계적인 와인 생산지로 탈바꿈시킨 인물이다.
그는 와인 산업에 혁신을 불어넣었다. 스테인레스 탱크 발효와 저온 발효를 도입했고, 캘리포니아에선 처음으로 프랑스산 작은 오크통을 사용했다. 나사(NASA)와 협력을 통해 포도밭의 기후정보를 얻어 토양을 관리하기도 했다. 보다 질 좋은 와인을 생산키 위해 섬세한 와인제조 기법을 도입했고 자연 농법을 접목하는 등 와인산업의 근간을 바꿔 놓았다.
그는 또 '와인관광'을 개발한 탁월한 사업가이기도 하다. 와인 시음을 관광상품화 해 소비자를 직접 와이너리로 불러들인 것이다. 나파밸리 대부분의 와이너리들이 이를 좇아 와이너리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와이너리 입구는 스페인 수도원의 모양을 본 딴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 처음 와인을 소개한 수도원 신부들을 기려 건축했다고 한다. 이 건물 안에서 와인 테이스팅이 이뤄졌다. 처음 나온 와인은 화이트 와인인 쇼비뇽 블랑. 샐러리 송어 사과 등으로 만든 샐러드와 곁들여졌다. 스테이크인 메인 메뉴에 함께 나온 와인은 2006년 빈티지의 '로버트 몬다비 카베르네 쇼비뇽 리저브'였다. 고급스러운 향과 맛에 탄성이 이어졌다. 와이너리측은 이번엔 라벨을 가린 병을 가져와 비교 시음을 권했다. 좋은 와인인 것 같지만 왠지 둘 중에선 몬다비 와인의 손을 들어줄 것 같았다. 라벨을 벗긴 와인은 2000년 빈티지인 프랑스 보르도의 명품 '샤토 마고'였다. 테이블에 앉았던 손님들 모두가 놀라워했다. 샤토 마고보다도 낫다고 느껴졌다니. 곁들인 음식 때문인가. 아니면 이 와인을 키워낸 테루아의 기운이 더해졌기 때문인가.
샤토 몬텔레나
2008년 개봉됐던 영화 '와인 미라클'의 배경이 된 와이너리다. 캘리포니아 와인의 운명을 바꾼 '파리의 심판'을 다룬 영화다. 1976년 5월 파리에서 프랑스의 저명한 와인전문가들을 불러놓고 캘리포니아 와인과 프랑스 와인과의 비교 시음이 이뤄졌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진행된 결과 놀랍게도 캘리포니아 와인이 프랑스 와인을 모두 물리치고 1위에 올랐다. 이후 캘리포니아로의 관심이 집중됐고 신대륙 와인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이뤄졌다. 이때 1위를 한 화이트 와인이 바로 샤토 몬텔레나의 73년 빈티지 '샤도네'다.
와이너리엔 고풍스러운 성이 버티고 서있다. 터브란 이름의 사업가가 1882년 이곳에 와이너리를 시작하며 지은 건물이다. 이후 와이너리의 주인은 중국인 손을 거쳐 영화 속 실제 주인공인 짐 바렛에게 넘어왔다. 83세의 바렛은 여전히 매일같이 와이너리를 찾는다. '포도밭의 가장 좋은 비료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라는 것을 실천하는 걸음이다.
오퍼스원
와인만화 '신의 물방울'에도 등장한 최고급 와인 '오퍼스원'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오퍼스원은 두 남자의 꿈이 더해진 곳이다. 프랑스의 샤토 무통 로칠드의 바론 필립 로칠드와 나파밸리의 로버트 몬다비가 그 주인공이다. 로칠드가 새로운 와인 생산지로 캘리포니아를 눈여겨 보고 사업 파트너를 찾았다. 그때 눈에 띈 이가 몬다비였다. 70년 처음 만나 의기투합한 그들은 78년 마침내 공동의 와이너리를 차리고 프랑스 '그랑 크루'에 못지 않는 프리미엄 와인 생산에 들어갔다. 오퍼스원의 성공은 캘리포니아 와인의 모델이 됐고 고품질 와인 생산의 봇물을 터뜨렸다.
와이너리 입구엔 올리브나무가 길게 도열해 있다. 그 길의 끝에 라임스톤으로 지은 웅장한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가이드의 안내로 와이너리를 둘러보았다. 가이드는 와인메이커가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 붓는 곳은 포도밭이라고 했다. 그가 밭에서 얼마나 많?땀을 흘리느냐에 따라 와인의 맛이 결정된다고 했다.
이곳에선 단 한종의 와인인 오퍼스원만 생산한다. 오크통 숙성고 옆에 마련된 응접실에서 기다리던 시음이 이뤄졌다. 77%의 카베르네 쇼비뇽과 12%의 멜로 등으로 블렌딩 된 2006년 빈티지였다. 와인은 아주 작은 입자로 잘게 부서져 입안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그윽한 향이 퍼져 오르는데, 역시 오퍼스원이었다.
조셉 펠프스
오퍼스원에 버금가는 명품 와인 '인시그니아'가 생산되는 와이너리다. 창업자 조셉 펠프스가 1972년부터 포도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다른 나파밸리의 와이너리와 달리 구릉을 끼고 있어 와이너리의 풍경이 유독 아름답다. 이곳에선 인시그니아 외에도 프리스톤, 프리독 등 다른 브랜드의 와인도 생산한다.
도메인 샹동
유명 샴페인 생산 회사인 모엣샹동과 코냑으로 유명한 헤네시가 함께 나파밸리의 새로운 꿈을 위해 합작해 세운 와이너리다. 스파클링 와인이 주된 상품이다. 이곳의 와이너리는 유럽의 잘 가꾼 공원을 옮겨놓은 듯하다.
와이너리엔 '에투알(etoile)'이란 레스토랑이 있다. 미슐랭 가이드에 2007년부터 3년 연속 이름이 오른 유명 레스토랑이다. 와인과 음식의 환상적인 조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나파밸리를 음식의 메카로 띄우는 데 선두에 섰던 레스토랑이다.
스텔링
나파밸리 와이너리 투어의 지평을 바꾼 곳이다. 와이너리를 어른들을 위한 놀이공원으로 만들었다. 입구에서 매표를 하면 언덕 위 하얀 성처럼 만든 건물까지 곤돌라를 타고 올라간다. 건물 안을 돌며 와인의 생산과정을 둘러보고 곳곳에 마련된 시음대에서 와인들을 맛본다. 건물의 테라스에서 내려다 보는 와이너리의 풍경이 절경이다. 다른 와이너리와 달리 유독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나파ㆍ소노마(미국)=글ㆍ사진
■ 19세기 풍 열차에서 펼쳐지는 음식과 와인의 환상 궁합
나파밸리 와인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은 와인트레인을 타는 것이다. 나파의 명물인 와인트레인은 달리는 레스토랑이다. 창 밖으로 드넓게 펼쳐지는 포도밭을 감상하며 최고의 서비스로 차려내는 품위 있는 코스 음식에 나파밸리의 최고급 와인을 곁들여 우아한 식사를 즐기는 곳이다.
나파시를 떠나 나파밸리의 중심부를 가로 질러 40km를 달린다. 19세기 풍의 앤틱 열차로 꾸며져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는 느낌이다. 열차는 중간에 정차해 1시간 가량 와이너리 투어를 떠나기도 한다. 와이너리 투어에 흠뻑 빠진 일부 여행객들이 열차 출발 시간을 놓치는 일도 간혹 일어난다고 한다.
처음 출발한 창밖의 풍경은 도심의 창고와 공장들이다. 도심을 벗어나 와이너리들이 펼쳐질 때 테이블엔 음식이 차려진다. 음식들은 모두 열차 내 식당에서 요리된다. 빵도 반죽만 가져다가 열차 안에서 직접 구워 낸다. 주방은 큰 유리창을 통해 공개된다. 열차 안에서 이뤄지는 요리 자체도 구경거리인 셈이다.
열차에서 차려 내는 음식 메뉴 선택은 와인과의 조화에 최우선을 둔다. 매일 와인 담당자와 요리사가 만나 그 날의 와인과 그에 맞는 음식을 상의해 결정한다. 음식을 나르는 이들은 와인을 따라주며 그 와인의 유래와 맛 등을 상세히 알려준다.
와인트레인 상품은 오전 10시30분 체크인을 시작해 역사에서의 와인 시음, 열차 탑승, 식사, 와이너리 투어 등을 거쳐 오후 2시30분에 종료된다.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 샌프란시스코 리전오브아너/ 세계적 美港 땅끝 미술관… 하얀 고독을 기다리다
태평양의 바다 한 조각을 품고 있는 미항(美港) 샌프란시스코. 아름다운 도시 경관과 온화한 날씨, 다양한 문화가 뒤섞여 항상 싱그러운 활기로 가득 찬 도시다. 짙은 오렌지빛의 골든게이트 브리지, 영화 '더 록'으로 널리 알려진 알카트라즈섬,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차이나타운 등 매력 넘치는 랜드마크들이 즐비한 곳이다.
샌프란시스코로 떠나기 전 그에게 연락을 넣었다. 그 도시에서 오랜 시간 유학생활을 보냈던 지인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명소 한 곳을 추천해달라 했더니 그는 망설임 없이 '리전오브아너(Legion of Honor) 미술관'을 일러주었다. 너무도 생소한 곳이기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평일 늦은 오후에 가면 자욱한 안개와 드문 인적 등 여러 가지가 어우러져 평소보다 백배쯤 더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곳이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가족과 떨어져 오랜 시간 홀로 고독과 싸워야 했다. 전에도 샌프란시스코에 대해 물으면 그저 외로웠다고만 했던 그였다. 겉으로 보이는 그의 강인함 내면엔 켜켜이 쌓인 차가운 고독이 있었다. 그가 고독을 달래러 찾아갔던, 백배 더 외롭게 해 그 고독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던 그곳으로 감성의 촉수가 뻗었다.
샌프란시스코 시내투어를 시작해 황홀한 빛깔의 골든게이트 브리지를 지날 때도, 시끌벅적한 페리빌딩의 파머마켓을 구경할 때에도 마음은 리전오브아너로 먼저 가 있었다.
골든게이트 공원을 지나 샌프란시스코의 땅끝(Land's End)에 있는 리전오브아너 미술관에 올랐다. 프랑스 파리의 레종도뇌르 궁을 모델로 해 1920년대 지어진 미술관이다. 당시 캘리포니아에 유럽의 예술, 그 중에서도 프랑스의 예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미술관에는 유럽의 회화, 조각, 서적 등 많은 예술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특히 로뎅의 작품은 70점이 넘는다고 한다.
주말이라서 인지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다. 물안개도 피어 오르지 않았다. 조용함 보단 부산스러움이 미술관의 사각 마당을 채웠다.
도리아 양식을 대표하는 양머리 조각을 올린 기둥들이 백색의 공간을 빙 둘러 도열하고 있다. 입구 쪽을 뺀 삼면에는 기둥 뒤로 높은 하얀 벽이 둘러쳐졌다. 바람은 입구 쪽 기둥 사이로 들어와 사각의 마당 안에 갇혔다. 한참을 마당에 걸터앉아 지나는 관람객들이 없는 순간을 기다렸다. 혼자서만 넓은 마당을 독차지 할 수 있는 빈 공간의 그 순간을. 그의 외로움을 차가운 결정으로 맺히게 했던, 백색의 고독을 기다렸다.
리전오브아너와 가까운 골든게이트 공원은 뉴욕의 센트럴파크에 뒤지지 않는 세계적인 도심공원이다. 한 때 바람 부는 거대한 모래언덕이었던 이곳은 도심의 드넓은 녹색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공원에는 드영미술관과 캘리포니아 과학아카데미가 있다. 과학아카데미는 대형 수족관과 자연사박물관, 열대우림, 세계 최대 규모의 최첨단 디지털 천문대 등을 함께 갖추고 있는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박물관으로도 유명하다.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샌프란시스코와 관련 있는 지질학 전시관은 엄청난 지각 진동을 경험할 수 있는 지진 가상체험공간도 갖추고 있다. 드영미술관 전망대에 오르면 과학아카데미의 랜드마크인 녹색 옥상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놓칠 수 없는 것은 '케이블카'로 불리는 전차다. 샌프란시스코 특유의 굴곡진 구릉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는 많은 영화를 통해 소개됐다. 노선은 파웰하이드선, 파웰메이슨선, 캘리포니아선 등 3개가 있다. 각각의 노선들은 샌프란시스코 최고의 전망을 보여준다.
알카트라즈 섬과 골든게이트 브리지를 지나는 유람선이 출발하는 39번 부두(Pier 39)는 바다사자들로 유명하다. 배가 닿는 선착장에 백여 마리 떼를 지어 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한데 뒤엉킨 바다사자들은 지켜보는 사람들도 많고 지나는 배도 많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한다.
페리빌딩은 샌프란시스코의 활기찬 아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맛있는 음식점들과 치즈 야채 가게 등 식재료 점포가 많이 들어서 있다. 매주 화, 토요일 오전에는 건물 주변에 파머스마켓이 열린다. 현지 농부들이 직접 농산물을 들고 들어와 펼치는 장터로 항상 활기가 넘쳐난다.
샌프란시스코=글 사진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 여행수첩/ 샌프란시스코
● 캘리포니아 와이너리 투어의 출발점은 샌프란시스코다. 도심에서 나파밸리나 소노마밸리까지 자동차로 1~2시간 걸린다. 와이너리들은 각기 방문센터를 운영, 와인 시음코너를 개방하고 있다. 시음을 하려면 10~30달러 정도를 내야 한다.
● 나파밸리 입구의 나파시와 밸리 중간의 연트빌, 세인트헬레나와 소노마밸리의 소노마 등은 캘리포니아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작고 예쁜 도시와 마을들이다.
● 한진관광은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ㆍ소노마밸리의 와이너리 투어 상품을 새로 선보였다. 로버트 몬다비, 오퍼스원, 도메인 샹동, 샤토 몬텔레나 등 신대륙 와인으로 명성이 높은 유명 와이너리들을 방문해 와인을 시음하고, 연트빌 등에 있는 최고급 레스토랑에서의 멋진 식사와 와인트레인 탑승 등을 포함한 고품격 상품이다. 현지에서 와인 전문가의 안내를 받아 진행된다. 가격은 565만원부터. 와인 교육으로 유명한 'UC Davis 대학'에서 4시간의 와인 특별 강습 프로그램도 가능하다. 전문가로부터 설명을 듣고 직접 시음을 통해 소믈리에 수업을 듣는다. 한진관광 칼팩팀 (02)726-5701 www.kaltour.com
● 미국 현지 교포들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샌포투어(www.SanFoTours.com)'를 통해 와이너리 투어를 경험할 수 있다.
●www.visitcalifornia.co.kr
●www.robertmondaviwinery.com
●www.opusonewinery.com
●www.montelena.com
●www.chandon.com
●www.jpvwines.com
●www.sterlingvineyards.com
●www.winetrain.com
●www.famsf.org/legion/
●www.calademy.org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이성원기자의 여행편지/ 나파밸리의 친환경은 선택이 아닌 필수
나파밸리의 와이너리를 지날 때였습니다. 포도 넝쿨이 도열한 포도밭 중간중간 유채꽃처럼 생긴 노란 꽃들의 군락이 보였습니다. 가이드에게 무슨 꽃이냐 물었더니 머스타드꽃이라 하더군요. 2, 3월 절정을 이뤘을 때 나파밸리에선 머스타드꽃축제가 열렸다고 합니다. 포도밭의 지력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심은 꽃이랍니다.
이제 막 새순이 돋기 시작한 와이너리들을 돌아볼 때 그곳의 담당자들은 모두 와인의 품질과 함께 친환경 농법을 강조했습니다. 바이오 농법, 유기농 재배, 지속 가능한 농업 등 그 적용되는 이름은 달랐지만 모두 친환경 재배를 위해 애를 쓰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더군요.
포도밭 서리를 막기 위해 설치된 팬에는 태양광 발전판이 달려있었고, 해충이나 쥐들을 막기 위해 살충제 대신 천적인 올빼미 박쥐 등을 키웠습니다. 카모마일 쐐기풀 등을 심어 해충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는 등 살충제와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나파밸리 중심에 있는 연트빌이란 곳은 무척 아름다운 곳입니다. 작은 마을이지만 이곳엔 미슐랭가이드에 이름을 올린 레스토랑이 8개에 이릅니다. 요리천재 토마스 켈러가 운영하는 '프렌치 런드리' '부숑' '부숑 베이커리' 등은 한국의 미식가엔 이미 귀에 익은 곳들입니다. 그 중 최고로 치는 '프렌치 런드리' 앞에는 총주방장이 직접 재배하는 밭이 있었습니다. 그 밭에서 나는 식재료를 보고 그 날의 메뉴를 결정해 요리로 내놓는다고 하더군요. 와이너리의 와인메이커가 가장 많은 시간을 포도밭에서 보내듯, 요리사도 맛의 원천인 식재료를 키우는데 가장 공을 들이는 것입니다. 물론 철저한 유기농이겠죠.
연트빌의 발데소노란 고급 호텔의 레스토랑도 따로 텃밭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 호텔의 홍보담당자는 호텔의 안락한 숙소나 스파시설 보다 호텔의 친환경적인 운영에 더 목소리를 높여 홍보했습니다.
건물 옥상마다 태양광 발전판이 달려 있었고 땅속 깊숙이 관을 꽂아 지열을 이용해 냉난방을 하고, 음식 쓰레기는 밭과 정원의 거름으로 재활용을 한다더군요. 기존 터에 있던 석조건물의 자재로 호텔의 외벽을 장식했고, 침대보나 식재료 등 필요한 물품은 7마일(11km) 이내에서 생산된 것으로만 조달해 운송에 의한 탄소발생을 줄인다고 합니다. 버려진 고목을 잘라 식당 테이블을 만들 때도 20분 안에 제작을 끝내 에너지를 줄이는 등 아주 세심한 곳까지 환경을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나파밸리의 와이너리나 레스토랑, 호텔들에게 환경은 가격이나 품질보다도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환경에 대한 더욱 높아진 기대 수준을 맞추기 위해 그들은 한층 더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입니다.
이제 환경은 선택이 아닌 필수, 한가로운 미래가 아닌 당장의 생존을 가르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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