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6일 밤 백령도 해상에서 침몰한 해군 초계함 천안함의 함미 부분이 15일 인양됐다. 천안함 승선자 104명 중 생존자 58명과 시신 발견자 2명을 제외한 실종자 44명의 시신이 선내에서 잇달아 발견되고 있다.
아직 바다 속에 있는 함수 부분을 인양하고, 침몰 원인을 규명하고, 원인에 따른 대책을 세우는 등 어려운 과제들이 남아 있지만, 이번 사건은 함미 부분 인양으로 첫 고비를 넘겼다. 이제는 지난 20일 동안 온 나라를 흔들었던 충격과 슬픔을 갈아 앉히고, 다음 고비를 잘 넘길 수 있도록 냉정하게 사태를 점검해야 한다.
불행한 사건에서 교훈 얻어야
불행한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강해질 수 있는 길은 그 사건에서 얻은 교훈을 깊이 새기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우선 군은 사건 발생 초기의 허술한 대응과 말 바꾸기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유언비어가 난무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26일 밤 9시22분 천안함 침몰 즉시 전군 합동 작전 A급 조치가 발령됐지만, 공군전투기가 사고 수역에 출동한 것은 사건발생 1시간이 지난 후였다. 백령도 해안 경비병이 그날 밤 폭발음을 듣고 열상감시장비(TOD) 녹화를 시작했다는 발표도 의혹을 불렀다. 야간 내내 녹화해야 하는 장비를 왜 꺼놓고 있었나, 다른 화면을 숨기는 게 아닌가 라는 의문이 일었다.
최근엔 더 심각한 사실이 밝혀졌다.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사건 발생 49분 후인 밤 10시11분 첫 보고를 받았고, 국방부 장관은 52분 후인 10시14분에야 보고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합참 지휘통제반장이 여기저기 연락하다가 의장과 장관에게 보고하는 것을 깜빡 잊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동안 합참은 의장이 휴대전화로 보고를 받고 작전지시를 했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육해공 군사작전을 총괄하는 최고 지휘관이 초계함 침몰을 49분이나 몰랐다는 사실과 군의 거짓말에 국민은 경악했다.
진보정권 10년 동안 남북관계가 화해무드로 가면서 군도 긴장이 풀렸던 면이 있는데, 보수정권에서까지 안보 의식이 느슨했던 것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있다. 군은 이제라도 솔직하게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군사기밀이라면 단호하게 끝까지 지키고, 공개할 수 있는 것은 이랬다 저랬다 하지 말고 공개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따른 유연함과 단호함을 동시에 지녀야 한다. 안보에 구멍이 뚫렸다는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지 못하면 군이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해군 UDT 한주호 준위의 경우도 영웅적인 죽음이라는 점만 강조되었으나, 그가 나흘 동안 계속 작업을 한 것은 안전규정 위반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실종자 구조가 중요해도 군이 이런 식의 무리를 종용하거나 허용하면 더 큰 희생을 부를 위험이 있다. 35년 간 UDT의 특수임무를 수행해 온 베테랑이 후배들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휴식도 없이 무리하게 작업하다가 호흡곤란으로 사망한 사건을 단순한 영웅 스토리로 끝낼 수는 없다.
'침묵으로 하는 말' 귀 기울이길
전문성을 무시한 채 온갖 의혹 보도와 선정성 경쟁으로 혼란을 부추긴 언론, 유언비어를 정략에 이용해 온 무책임한 정치권도 크게 반성해야 한다. 이런 불행한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는 보다 성숙해져야 한다. 정부를 믿고 참고 기다리는 훈련을 해야 한다. 오늘 이 나라에서 이런 사건을 놓고 정부가 국민을 끝까지 속이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슬프고 조급해도 전문가들이 마지막 판단을 내 놓을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죽어서 귀환한 천안함 수병들이 침묵으로 말하고 있다. 우리도 침묵으로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모두가 자기 주장대로 악을 쓰면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없다. 풋풋한 젊은 생명들이 나라를 지키다가 희생됐다. 우리 모두 옷깃을 바로 하고, 마음을 바로 해야 한다.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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