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에 몰린 쿠르만벡 바키예프(61ㆍ사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으로 피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AP 통신과 인테르팍스 통신 등은 "15일 바키예프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사태를 협의하기 위해 떠났다"고 전했다.
대규모 반독재 시위 '튤립혁명'을 통해 집권한지 5년 만에 본인도 반정부 시위로 축출된 바키예프가 궁지에 몰리자 사실상 망명길에 나선 것이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이에 대해 미국, 러시아, 카자흐스탄이 사전에 조율해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과도정부는 "유혈사태의 책임을 묻겠다"며 사법처리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로자 오툰바예바 과도정부 수반은 14일 수도 비슈케크를 방문한 로버트 블레이크 미 국무부 남ㆍ중앙아 담당차관보와 면담 후 "바키예프는 너무 많은 피를 흘리게 했기 때문에 면책 한계를 벗어났다"며 "재판에 넘겨져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지난 7일 정부의 부패와 공공요금 폭등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대를 향한 정부군의 발포로 84명이 사망한 것에 바키예프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남부 지역으로 피신한 바키예프는 앞서 13일 외국망명 허용 등의 신변보호가 보장되면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오툰바예바 수반은 15일 "법정에서 일반적인 법률 방어권은 보장하겠지만, 다른 신변보장은 있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바키예프의 요구에 긍정적이었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인데, 블레이크 차관보와의 면담을 통해 사법처리에 대한 미국의 의중을 확인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과도정부는 시위대 발포에 가담한 바키예프의 가족들과 전 국방장관도 사법처리하겠다는 계획이어서, 대규모 인적 청산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바키예프는 두 아들과 5명의 형제를 두고 있으며, 조카들까지 대부분 권력에 개입해 부를 축적해왔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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