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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아동국을 감동시킨 따뜻한 동포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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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아동국을 감동시킨 따뜻한 동포애

입력
2010.04.14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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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A한인타운에서 의류업을 하던 이행기(47)씨가 갑자기 쓰러진 건 지난 1월 12일 오전 7시께였다. 학교 갈 채비를 하느라 분주하던 이 씨의 두 개구쟁이 아들(11살, 9살)은 급히 911에 전화를 했다. 하지만 병원에 이송된 이씨는 몇 시간 뒤 숨을 거뒀다. 긴 불경기로 사업이 어려워져 아파트 세 비용도 못 낼 형편이던 이씨는 지난 해 7월부터 두 아들과 모텔에서 장기 투숙해오던 터였다. 엄마와는 연락조차 끊긴 지 오래. 두 아이는 하루 아침에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됐다.

LA카운티 아동보호국이 즉각 나서 백방으로 아이들의 가족과 친지를 수소문했지만 석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성과가 없었고, 부산에 사는 친척과 연락이 닿긴 했으나 그 역시 형편이 딱해 어쩔 수 없는 처지였다. 부득이 두 아이는 포스터 홈에 넘겨지거나 따로 입양이 돼야 할 상황이었다.

미주한국일보가 이 딱한 소식을 전한 것은 지난 7일. 한인 사회의 사랑이 물밀듯이 쇄도했다. "제가 맡아 키우겠습니다. 입양 절차를 알려주세요.(일레인 송씨)" "기금을 내고싶습니다. 필요한 것을 알려주세요.(샌피드로 홀세일마트 한인상인 일동)" "아이들이 항상 의젓한 모습을 간직할 수 있게 아이들의 이발을 평생 책임지고 싶습니다.(한인 이발사 이영국씨)"….

그리고 이튿날인 8일, 미주한국일보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고맙습니다. 제가 아이들의 엄마입니다. 지금 당장 미국행 비행기를…." 그렇게 형제는, 한국으로 건너가 따로 살 길을 찾고 있던 엄마 김모(42)씨를 찾았지만, 아이들이 엄마의 품에 안기려면 또 하나의 큰 벽을 넘어야 했다. 엄마가 아이들의 양육 능력이 있다는 것을 당국에 입증해야 했던 것. 그게 여러 정황상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그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씨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무슨 짓을 해서든 아이들을 찾겠다"며, 전화 수화기를 붙들고 울었다고 한다.

그 뜨거운 동포애와 육친애가 LA카운티 정부 관계자들을 감동시켰고, 아동ㆍ가족서비스국(DCFS)은 이군 형제를 위한 성금모금 신탁계좌를 별도로 설치했다. DCFS국 척 윌리스 공보관은 "한인들의 기금 전달 문의가 쇄도해 별도 통로를 열기로 했다"며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아이들이 가족 곁으로 돌아가지 못해 모금운동을 벌인 것은 이번 한인 형제 케이스가 DCFS 역사상 두 번째"라며 고 말했다.

LA=미주한국일보 양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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