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 아직 열악하지만 라진은 기회의 땅"
지난달 10일 홍콩에 거점을 둔 중국의 한 자원개발업체 대표는 전력난을 겪고 있는 북한 라진항에 1억5,000만위안(247억원)을 투자해 풍력발전소를 짓겠다는 사업제안서를 라선특별시(라진항과 선봉 지역)에 제출했다. 그는 이날 북한이 직영하는 지린(吉林)성 조선족자치주 옌지(延吉)시 류경호텔에서 북한의 한 고위 관계자와 만나"5개 투자기업으로 구성된 중국 남방 K컨소시엄이 발전기 10대를 갖춘 풍력 발전소를 라진항에 건설하고 싶다"며 "북한의 예비허가가 내려지는 즉시 라진항에서 사업타당성 조사를 벌이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발전소 건설대가로 20년에 걸쳐 투자규모 상당의 북한 철광 개발권을 확보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중국 상인답게 확실한 투자 대가를 요구한 것이다.
중국이 북한의'경제특구'로 일컬어지는 라진항으로 달려가고 있다.
중국 정부가 동북진흥계획에 따라 지난해 11월 두만강 유역개발프로젝트인 '창지투(창춘長春-지린吉林-두만강圖們江)개방선도구사업을 승인한 후 중국기업들은 자원의 보고인 동북3성이 동해를 통해 태평양으로 뻗어갈 수 있는 경제전략적 요충지로 라진항을 주목했다. 향후 급변할 중국 동북지역의 발전을 북한 경제개발의 선도구가 될 라선시의 미래에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북핵 문제로 유엔 대북제재가 엄연한 현실과 북한체제의 불안정 리스크 때문에 중국 대기업들의 관심은 아직 약하지만 국영기업과'고위험, 고수익'을 좇는 중소업체들은 라진을 기회의 땅으로 보고 시장선점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24일 낮 12시10분. 북한 함북 은덕군 원정리와 라진항으로 연결되는 중국 훈춘(琿春)시 징신(敬信)진 촨허(圈河) 해관 정문 앞에는 중국인 100여명이 북한으로 들어가기 위해 세관검열을 받고 있었다. 이곳은 중국에서 라진항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북중 국경통로로 최근 지린성이 320만위안을 투자해 촨허대교의 보수공사에 착수하면서 통행자들은 도보로 이곳을 건너고 있다. 여기서 만난 중국 저장(浙江)성의 한 중소 화공업체 대표는"북한은 라진지구를 향후 사할린과 시베리아에서 오는 원유 및 천연가스 공급기지로 발전시켜, 석유화학단지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라며 "지난해 말 이곳에 작은 화학공장을 세워 미래 사업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전력공급이 부족해 오전 내내 정전상태이고 오후 3시부터 밤11시까지만 전기가 들어와 불편한 점이 많다"며 "휴대전화를 가지고 북한에 들어갈 수도 없고 현지에서 사용하는 국제전화사용료는 1분당 15위안(2,500원)"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라선시의 군부대 기업과 합작형식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그는 북측으로부터 추가 사업확장 권유를 받고 있지만 최근 화폐개혁 이후의 불안정과 통신ㆍ전력ㆍ용수 등 사회간접자본의 열악성 때문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4년부터 라진에 3곳의 내의봉제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남한측 기업 지린(吉林)쌍방울트라이방직유한공사의 중국하청업체 경영관리 직원 4명도 만날 수 있었다. 훈춘 출신으로 성이 쉬(許)라는 40대 남성은 "최근 평양에서 파견된 정부 고위관리들이 직접 챙길 만큼 라선시가 북한 경제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며 "주로 동북3성의 중국업체들에게 라선시 관계자들이 직접 임대용지 제공 등 투자유치 제안들을 쏟아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욕에 비해 제도적 뒷받침과 사회기반시설이 아직 미비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쉬씨는 "올 1월 라선무역지대법이 개정되면서 한국기업의 라선투자도 가능해져 북한측이 쌍방울트라이의 사업확장을 독려하고 있다"며 "그러나 쌍방울측은 향후 5년 라선시의 경제실험추이를 지켜본 후 천천히 결정하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중국조선족 무역상들에게도 라진항은 인기다. 옌지가 고향인 중국동포 박모씨는 가리비와 멍게 등을 현지에서 양식해 라진항에서 부산항으로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다수 중국동포들은 라선에서 박씨처럼 수산물 양식업을 하거나 쌀,신발,옷,건전지,콩,기름 등을 파는 일용품가게들을 운영하고 있다. 반면 중국인들은 다소 규모간 큰 숙박업이나 음식점, 수산물 유통업, 무역업 등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키워가고 있다.
훈춘 시내에서 차로 서쪽으로 1시간 달려 도착한 사퉈즈(沙垞子)해관은 북한 함북 샛별군과 연결된 중요한 또 하나의 북중 국경통로이다. 이곳은 중국기업들이 개발권을 가지고 있는 북한 함북지역 20여곳의 탄광들에서 채취한 철광, 무연탄, 몰리브덴 등 광물자원들을 실어 나르는 화물차 행렬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동북아 최대 매장량(약 70억톤)을 가진 함북 무산광산에서 출발한 5톤짜리 중국 화물차 3대가 3筠?채 안 걸리는 세관검사를 받고 훈춘시를 거쳐 옌지로 향했다.
옌지의 한 대북무역상은 "중국이 북한에서 가장 욕심을 내는 것이 바로 광물자원"이라며"최근 중국 지린성이 3억위안(500억원)을 투자, 원정리에서 라선시를 잇는 도로확장과 포장사업을 해주는 대가로 북한 자원개발권과 라진항 추가 임대권을 확보하는 방안을 협의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결국 북중 경제협력은 남북경협처럼 일방적 퍼주기가 아닌 주고받기식 거래인 셈이다. 중국은 북한이 필요한 각종 사회기반 인프라 프로젝트를 제공하고, 북한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다 얻어내는 실리적 경협을 추구한다.
중국은 동북진흥전략의 완성을 위해 동해와 태평양으로 뻗어나가는 출구인 라진항을 얻기 위해 북한을 어르고 달래고 있다. 북한 역시 '굴기(崛起)'하는 중국의 '창지투 개발 효과'를 지렛대 삼아 라선을 북한의 경제중심축으로 삼는다는 전략을 세웠다. 양평섭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베이징사무소장은"북한이 라선을 특별시로 한 건 구체적으로 중국을 대상으로 문을 열겠다는 것"이라며 "북중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필요충분 조건 속에서 우리의 선택의 폭은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한진 코트라 베이징사무소 부장은 "우리 기업들이 중국 내수시장 확대를 생존전략으로 삼듯 중국 동북진흥책은 북한 경제개발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며 "체제위협 등을 우려, 이 기회마저 놓친다면 북한으로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훈춘ㆍ옌지ㆍ베이징=장학만특파원 local@hk.co.kr
■ 中 동북진흥 야심 '창지투'서 뻗는다
올 10월 개통될 중국 동북지역의 창춘(長春)~지린(吉林)~훈춘(琿春)고속도로(사진)는 중국정부가 2020년까지 2,800억위안(457조원)을 투자하는'창지투(창춘-지린-두만강圖們江 지역) 선도구'개발사업의 본격적인 출발점이다. 중국의 오랜 숙원사업인 동북진흥정책의 상징적 성과물이기도 하다.
'창지투'개발사업의 핵심내용은 중국 동북지구(동북3성과 내몽고 동부)에 경제벨트를 구축해 풍부한 지하자원 등 무한한 발전잠재력을 현실화하고 두만강 유역 개발을 통해 동해와 태평양으로 뻗어갈 수 있도록 항구를 확보하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 라진항과 러시아 자르비노를 연결하며 두만강 유역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 바로 '지에깡추하이(借港出海: 항구를 빌려 바다로 진출한다)'전략이다. 올 가을 창춘~훈춘 고속도로가 완공될 경우 현재 8시간 걸리던 거리가 5시간으로 줄고, 이어 지린성의 투자로 훈춘~라진항을 잇는 북중간의 고속도로까지 생길 경우 창춘~라진항의 거리는 최장 6시간 내로 좁혀진다. 중국 동북지구는 단기적으로 북한의 라진항을,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전체를 물류센터로 활용해 부족한 항구문제를 해결하고 동북진흥을 실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과연 북한 라진항은 중국 동북지구가 목말라하는 물류기지로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최근 라진항을 직접 취재한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 환추시바오(環球時報)의 청깡(程剛)기자는"중국이 10년 임대한 라진항 1호 부두는 너무 협소해 동북지구의 물류는 물론 옌볜(延邊) 물류 조차도 소화해내기 어려울 정도"라며 "향후 개발예정인 4,5,6 부두의 건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는 중국 동북진흥 계획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은 라진항의 개발 자체가 미래의 얘기이고, 속도를 내기 위해선 해외투자유치가 시급해 현재로선 그 성공 가능성 역시 불확실하다는 지적이다.
훈춘ㆍ투먼=장학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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