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한 청정에너지' 태양광… 세계 시장규모 내년엔 반도체 추월
전 세계는 지금 '소리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대체 에너지 개발 경쟁이 그것이다. 주요 국가들은 이산화탄소(CO2) 감축 계획을 발표한 뒤 태양광과 풍력, 바이오, 연료전지 등 신재생에너지를 서둘러 상업화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투자금액을 쏟아 붓고 있다. 화석연료를 대체할 충분한 에너지원의 확보를 신성장동력 창출의 밑거름으로 여기는 것이다.
태양광발전은 친환경 신재생에너지의 대표 주자라 할 만하다. 우선 에너지원이 무한하다. 시스템의 구조가 간단하고 안전성이 높은데다 수명 또한 20~30년으로 상당히 길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25~32g/kWh 수준으로 가스발전(400g/kWh)의 10% 미만인 청정에너지다. 1㎿당 27.3명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일자리의 보고이기도 하다.
시장 전망도 밝다. 세계경제 침체와 각국 정부의 지원 축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태양광발전은 전년 대비 9.1% 성장했고,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압력과 대체에너지시장 확대로 올해부터는 연평균 성장률이 30%대로 예상된다. 독일 컨설팅기업 폰톤은 지난해 누적 설비량 20.7GW인 세계 태양광시장이 2011년에는 30.6GW까지 늘면서 1,210억달러 규모로 성장, D램과 반도체시장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난점이 있다. 바로 발전단가가 높다는 점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8년 기준으로 태양광의 발전단가는 1kWh당 570원으로 유연탄(51월)과 원자력(39원), LNG(144원)는 물론 연료전지(168원)와 풍력 등 다른 신재생에너지에 비해서도 경쟁력이 떨어진다. 생산비용 측면에서 화석연료 수준과 같아지는 '그리드 패러티'(Grid Parity)의 달성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선 효율 향상을 위한 대규모 연구개발(R&D)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이다.
국내 기업 중 태양광발전에 가장 먼저 눈을 맞춘 곳은 현대중공업이다. 신재생에너지라는 용어 자체가 낯설던 1997년에 이미 태양광발전의 사업성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 2004년에는 전담팀까지 구성했고,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로부터 태양광발전 기술개발 주관기관으로 선정되면서 태양광발전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2005년부터 생산라인을 가동하기 시작, 현재는 충북 음성의 1,2공장에서 모듈과 태양전지를 각각 200MW, 330MW 생산하고 있다. 두 분야 모두 국내 최대다. 5월 초부터는 주택용 태양전지 발전 시스템과 3만㎾ 정도의 태양전지를 일본 시장에도 판매할 예정이다. 경기 용인의 현대종합연구소 내 기계전기연구소에선 160여명의 석ㆍ박사 인력이 태양광발전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사업 진출 1년만인 2006년 국내 최초로 6,000만달러 규모의 자체 브랜드 태양광발전 설비를 스페인의 세계 최대 규모 태양광발전단지에 수출했다. 이는 국내 태양광발전 사업의 수출산업화 가능성과 함께 태양광발전의 성장 잠재력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현대중공업은 특히 근래 들어 '폴리실리콘→잉곳→웨이퍼→태양전지(셀)→모듈→시스템ㆍ발전소'로 이어지는 태양광발전 시스템 전체를 수직계열화하는 데 전력을 쏟고 있다. KCC와의 합작법인(KAM)을 통해 올해부터 태양전지의 핵심 소재인 폴리실리콘을 연간 2,500만톤씩 생산하게 됐고, 음성 2공장에선 100㎿ 규모의 잉곳과 웨이퍼도 생산할 예정이다.
김권태 전기전자사업본부장(전무)는 "태양광발전 분야에 있어 아직은 국내의 기술수준과 설비 국산화율이 각각 71%, 66%에 불과하다"면서 "향후 기술력 향상과 핵심 설비 국산화에 주력하는 동시에 2012년까지 태양전지 생산규모를 1GW까지 늘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들도 속속 가세하고 있다. LG전자는 올 초부터 경북 구미공장에서 연산 120㎿ 규모의 태양전지 생산라인을 가동하기 시작했고, 내년엔 생산규모를 2배로 늘릴 계획이다. LG그룹 역시 2011년부터는 폴리실리콘(LG화학)과 잉곳ㆍ웨이퍼(LG실트론), 셀ㆍ모듈(LG전자), 발전ㆍ서비스(LG CNS)까지 수직계열화의 틀을 갖출 전망이다.
태양광 사업에 다소 뛰어든 삼성도 수직계열화 쪽에 포커스를 맞췄다. 삼성정밀화학이 조만간 폴리실리콘 생산에 들어갈 계획이고,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 태양전지 연구개발라인을 가동했다. 삼성에버랜드는 경북 김천에서 태양광발전소를 운영중이고, 삼성물산도 전문 브랜드를 통해 발전소 운영과 전력 판매사업을 시작했다.
OCI는 폴리실리콘 생산 분야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 헴록ㆍ바커에 이어 단기간에 세계 시장 생산능력 3위에 올라선 OCI는 전북 군산의 1,2공장에 이어 연말까지 12조원을 투자, 연산 1만톤 생산규모의 3공장을 완공해 총 2만7,000톤의 생산능력을 갖게 될 전망이다.
지난해 총 250억원을 들여 연간 30㎿ 규모의 쩐瑛滑?공장을 완공한 한화케미칼은 2020년까지 생산규모를 2GW까지 확대해 매출 2조원을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올 초부터 연간 50㎿ 규모의 태양전지 양산에 돌입한 STX솔라 역시 향후 5년간 200㎿까지 생산규모를 늘릴 방침이다.
중견기업 중에선 태양전지 제조업체인 미리넷솔라가 단연 돋보인다. 빛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평균 광변환 효율을 독자 기술로 세계 최고 수준(18%)에 육박하는 16%까지 끌어올렸고, 2012년까지 장기 공급계약으로 확보한 수주 물량만 해도 1조원에 달할 정도다.
하지만 난제도 산적해 있다. 국내 태양광발전 관련 R&D 예산은 2,000만달러(2006년 기준) 수준으로 일본과 미국, 독일에 비해 각각 13%, 24%, 37% 수준에 불과하다. 신재생에너지센터에 등록된 5,265개 업체 중 태양광 기업이 90.1%를 차지할 정도로 중소업체들이 난립한 가운데 상당수가 부가가치가 낮은 설치ㆍ운영에 편중돼 있다. 일부 대기업들도 기술 개발 대신 핵심소재와 장비를 수입한 뒤 이를 가공생산하는 데에만 몰두한다는 지적도 있다.
조용권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내 태양광 산업은 고효율화 기술이나 품질에 있어선 독일ㆍ일본ㆍ미국 등의 선도업체에 뒤지고 비용경쟁력에 있어서는 중국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고효율화는 물론 저비용화 기술 개발에도 주목해야 하고 타깃시장에 대한 비즈니스 모델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외국의 태양광발전 육성책은/ 日 보조금제 부활, 獨은 中企 투자액 50% 지원
신재생에너지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주요 선진국은 일찍부터 법과 제도를 정비하며 지원정책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우리의 기업 차원의 기술 개발과 시장 진출, 정부의 정책 지원 등이 따로 노는 듯한 형국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초기 태양광 시장을 선점했던 일본은 2005년 보조금 폐지로 독일ㆍ스페인에 뒤쳐지자 지난해 의무할당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보조금제를 부활하고 고정가격제까지 도입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시장을 창출토록 강제하는 동시에 초기 사업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주기 위함이다. 특히 보조금제의 초점을 태양광 주택에 맞춤으로써 기업은 물론 가계도 태양광발전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군마현 오타시에 조성된 세계 최대의 태양광발전 클러스터는 이런 노력의 산물이다. 550가구가 참여해 연간 2.200kWh의 태양광발전을 수행하는데, 정부가 예산 100억엔을 모두 지원했다. 또 산요ㆍ미쯔비시ㆍ니혼대학 등이 함께 전력계통 안정화 및 무정전 기술개발 등을 연구하고 있다.
독일은 신재생에너지 육성을 위한 강력한 지원정책에 의해 2005년 이후 누적발전 기준으로 세계 1위의 태양광발전 국가로 성장했다. 2008년까지 5.4GW의 설비가 설치돼 70억유로의 시장과 4만8,000명의 고용을 창출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독일 정부는 태양광발전 지원을 위해 신재생에너지법(EEG)을 기반으로 고정가격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매년 기준가격을 일정 수준 인하한다. 기업 입장에선 당연히 기술 개발과 발전 효율의 개선을 이뤄내야 하고, 정부도 무분별한 예산 낭비를 줄일 수 있다.
태양광 발전시스템에 100억유로, 실리콘 태양전지 기술 개발에 10억유로를 쏟아 부음으로써 큐셀과 같은 글로벌기업을 육성함과 동시에 태양광발전 중소기업에 투자액의 50%를 보조함으로써 국내 대ㆍ중소기업 간 튼튼한 연결구조를 갖추게 한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이에 비해 우리는 지금까지 고정가격제를 통해 외형을 키우고 많은 업체들이 태양광발전에 뛰어들게 만들었지만, 기술 개발과 효율 증대를 위한 장치는 소홀히 해왔다. 부품ㆍ제조장비 등의 국산화율이 한자릿수에 머물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그 결과 278개의 태양광발전 등록업체 중 80%가 설비용량1.1㎿ 이하의 영세업체인데다 설치ㆍ운영ㆍ관리 등 저부가가치 산업에 치중한 소규모 사업자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예정대로 2012년부터 의무할당제로 전환할 경우 전체 태양광발전 시장 자체가 퇴보할 것이란 우려까지 나온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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