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선에서 난리가 났다고 읍내가 떠들썩해도 마을 사람들은 태평하기만 하다. "설마 여기까지 뭔 일이 있겠어"라는 것. 폭격이 있으니 마을을 떠나라는 미군의 안내로 피난을 왔어도 마음 사람들의 대화는 한가롭다. "빨갱이들이 온대?" "가서 한번 물어봐!"
인민군이 섞여 있을 수 있다며 피난길을 미군이 가로막아도 사람들은 마냥 낙관적이다. "설마 미군이 우리를 쏘기야 하겠어?" 미군의 폭격으로 아비규환에 빠져든 한 피난민이 절규하듯 외치는 말. "온다는 도라꾸(트럭)는 대체 언제 오는겨?"
1950년 한국전쟁 중 벌어진, 3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을 다룬 '작은 연못'은 일종의 전쟁영화다. 그러나 승리의 희열과 패전의 고통을 조명하진 않는다. 전쟁을 다루면서 역사가 늘 외면하기 마련인 민초들의 숨겨진 참상을 그린다. 정치를 모르고 이데올로기를 모르고 오직 가족과 이웃이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만 아는 순박한 이들에게 전쟁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영화는 말한다.
장식을 최대한 걷어낸 카메라의 밋밋한 움직임이 오히려 슬프게 다가온다. 누군가를 중심인물로 내세우지 않고, 누군가를 참사의 원흉으로 지목하지 않으면서 여러 인물들을 통해 전쟁의 진정한 맨얼굴을 전한다.
극단 차이무를 이끌며 '비언소' 등을 만든 연극연출가 이상우의 감독 데뷔작. 어떤 구호도 없이 반전을 외치는 연출력이 인상적이다. 1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