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백혈병 논란에 반도체 라인을 공개키로 한 가운데 재계에서 자칫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과 기업 비밀 등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들이 제기하는 의혹을 잠재우기 위한 고육지책임을 감안하더라도 반도체 라인은 공개만으로도 경쟁력 비결과 노하우가 샐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 시민단체 및 글로벌 미디어까지 가세하고 있어, 도요타에 이은'삼성 때리기'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14일 "기업에게 1급 보안 사항인 핵심 생산 라인을 공개하라는 것은 손님들이 많이 찾는 식당을 찾아가 주방을 보자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며 "반도체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점에서도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러한 요구가 다른 기업이나 업종으로 확산될 수도 있어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이러한 이유로 공개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도체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하려다가 구속된 사례도 있고, 또 다른 반도체 기술의 미국 유출 사건의 재판이 진행될 정도로 반도체 업계는 기술 유출 시도가 빈번한 곳"이라며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내부의 반발이 심했다"고 말했다.
특히 재계 일각에선 이번 사건이 글로벌 차원의 삼성 때리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A기업 관계자는 "2008년 세계 자동차 1위에 오른 도요타가 최근 대량 리콜 사태를 겪는 것을 감안하면, 지난해 세계 전자업계 1위에 등극한 삼성전자도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최근 삼성전자의 백혈병 논란을 해외 언론까지 보도하기 시작한 것은 위험한 신호"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내 일부 시민단체들은 해외 사이트에 청원 운동까지 하고 있어, 국가 이미지 차원에서 결코 도움이 안 된다는 점도 재계의 우려다. B기업 관계자도 "올해 초 해외 언론들이 한국 경제와 기업들에 대해 유례없는 '띄우기'를 한 점을 상기해야 한다"며 "통상 '띄우기' 다음엔 '때리기'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부 시민단체들이 사실과 다른 내용을 진실인양 내세우고 있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을 경우 이를 인정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어 고심 끝에 공개를 단행한 것"이라며 "근거 없는 의혹을 잠재우는 소통의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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