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왔는데 봄 같지가 않다. 4월 중순, 벚꽃은 만발했는데 최저기온이 0도라니. 성급하게 봄 옷으로 갈아입었다가 겨울 외투를 다시 꺼내 입는다. 햇살 쏟아지는 교정 언덕에 기대어 졸음을 즐길 찬란한 봄은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얼어붙고 있는 남북관계와 계절의 심술이 너무 비슷해 깜짝 놀란다. 이런 차에 북중 경제협력과 중국의 대북 투자가 크게 확대될 것이라는 소식이다. 북한이 중국인들의 금강산 관광을 계획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북ㆍ중 우호협력 상징
이래저래 심란한 봄이다. 문득 6년 전 이맘때 처음 방북해 머문 신의주의 추억이 떠오른다. 2004년 4월 22일 발생한 평안북도 용천역 열차 폭발사고 직후 민간단체들의 대북지원 물자를 전달하기 위한 방북이었다. 용천역에서 10여km떨어진 신의주의 아파트 유리창이 다 박살 날 정도였으니, 이리역 폭발사고에 비견되는 대참사였다. 우리 일행도 표정 관리를 해야 할 지경이었다. 관광은 언감생심이었다.
신의주 '압록강 여관'에 머문 2박 3일은 거의 감금 수준이었다. 개별적으로 여관 대문 밖을 나갈 수도, 사진 한 장 찍을 수도 없었다. 압록강 여관이 신의주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영빈관 역할을 하는 곳이어서 그나마 조그만 숲을 산책할 수 있었다. 유명한 신의주 김치와 질리지 않는 냉면을 포식할 수 있었던 것도 즐거움이었다. 조그만 호텔 급 여관에서만 있었으니, 지금도 눈감으면 건물과 지형이 또렷하다.
3일 동안 가장 관심을 끈 것은 투숙객들에게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매대였다. 아직도 얼굴을 또렷이 기억할 정도로 여성 판매원들 주변을 맴돌았다. 많지 않은 종류의 상품이지만, 거의 대부분 중국산이었다. 일부 한국산은 메이드 인 코리아가 지워진 채 진열돼 있었다. 북한산은 고사리 말린 것 정도의 자연산 한두 개였다. 국경도시여서 중국산 상품이 매대를 점령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시에도 이미 북한에서 유통되는 상품의 대다수는 중국산이었다. 중국 단둥에서 압록강 철교를 건너 10분만 걸으면 당도하는 신의주 영빈관, 압록강 여관의 2004년 추억이다.
북측 민화협 안내원들에게 무지막지한 떼를 써 딱 한 번 바깥 나들이를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차량을 탄 채 이동하는 것을 전제로, 김일성 혁명 사적관과 세관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차창 밖으로 시내를 구경하겠다고 마음먹고 막 고개를 돌려 보려는 사이 혁명 사적관에 도착했고, 돌아오는 길에 압록강 둑 바로 아래 있는 세관에 들렀다. 세관이 압록강 여관에 붙어있다시피 하니 기대했던 시내 구경은 물거품이 되었다. 노련한 민화협 안내원들에게 완전히 당한 꼴이었다.
하지만 신의주 세관 앞 둑방 길에서 바라본 '조중 친선다리'는 영원히 기억에 남을 장소가 됐다. 중국측 호칭은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 뉴스 화면에 자주 나오는 바로 그 압록강 철교다. 철교 입구 윗부분에 큼지막한 글씨로 걸려 있는 조중 친선다리 간판이 순간 낯설었다.
남북관계 현실에 심란
서울로 치면 강북이 단둥이요, 강남이 신의주이다. 일제가 개발한 대규모 신도시다. 그러니까 압록강 철교는 한강 철교쯤 되는 것이다. 다행이 긴 시간을 머무를 수 있어 단둥에서 넘어오는 차량 행렬을 볼 수 있었다. 철교를 건너는 트럭 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아, 이게 북중 관계구나. 그 때의 충격이 아직도 얼얼하다.
중국의 자원외교가 세계 도처에서 마치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일 듯 기세등등하다. 최근 가장 가까운 나라, 북한도 정조준하고 있다. 화폐개혁 이후 더 어려워진 경제 상황, 악화되어가는 남북 경협, 진전 없이 맴도는 6자회담, 이 와중에 북한의 선택은 중국 경제로의 투항일 수도 있다. 남북관계를 우리 정부가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생각할수록 심란하다. 마침 오늘은 고 김일성 주석의 생일 '태양절'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