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약속을 이제야 지키게 돼 미안하면서도 정말 기쁩니다."
'한국 홍보 전문가'로 유명한 서경덕(36) 성신여대 객원교수가 부산 '소년의 집' 축구부원들과 함께 월드컵이 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현지에서 응원전을 펼친다. 서 교수가 '월드컵 현장에서 한국을 응원하고 싶다'는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약속한 지 무려 10년만이다.
서 교수와 소년의 집의 인연은 그가 강원 진부령의 12사단 65포병대대 정훈병으로 복무 중이던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부터 시작한 부대의 병영체험캠프에 고아들을 초청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부산 소년의 집 축구부원들이 낙점된 것. 당시 캠프에 참가한 40여 명의 아이들은 고된 유격훈련과 행군 등을 함께 체험했다. 이때 서 교수가 '꿈이 뭐냐'고 묻자 축구부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구동성으로 "국가 대표로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더라도 월드컵 현장에서 한국팀 경기를 응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해맑게 웃으며 소원을 말하던 아이들의 표정을 서 교수는 잊지 않았다.
서 교수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월드컵이 열리는 올해만큼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1월부터 후원 기업을 찾아 발벗고 나섰다. "마침 웅진코웨이가 2006년부터 어려운 환경에서도 축구 대표를 꿈꾸는 남아공 청소년에게 축구화 지급, 축구골대 설치, 장학금 지급 등 후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기업측에 제 취지를 설명했더니 적극 협조하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는 "당시 약속했던 아이들 대신 후배들이 가게 된 점은 이해해 주겠죠?"라며 가슴 한 켠에 자리잡은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씻어냈다.
그러나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소년의 집에는 남녀 각각 중ㆍ고교 축구부 등 4개 팀이 있고 선수만 100여 명에 이르지만 비용 등을 고려해 12명만 가기로 한 것. 부득이 서교수와 소년의 집 측은 운동실력뿐 아니라 학업, 성실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12명의 선수를 선발하기로 잠정 결론 내렸다. 소년의 집 정정화 축구감독은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를 잡으려고 아이들이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선수들은 국가대표 선발 경쟁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사기가 충천한 상태다. 발목 부상을 당한 축구부 주장 홍정호(18)군은 "빨리 회복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크게 외치고 싶다"며 결의를 다졌다.
어쨌건 최종 선발된 12명은 6월 8일 남아공으로 출발, 남아공 청소년팀과 친선경기ㆍ학교 페인트칠 봉사활동(10일), 길거리 응원ㆍ한국 홍보(11일), 그리스전 관람(12일) 등의 일정을 마치고 15일 귀국한다. 서 교수는 "도움만 받던 학생들이 비슷한 처지에 있는 현지 청소년과의 봉사활동을 통해 한층 성숙할 수 있는 시간도 갖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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