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6월 레스터 피어슨 캐나다 외무장관은 유엔헌장 조인 10주년 기념식에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을 대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57년 유엔비상군(UNEF) 파견에 앞장서 '수에즈 위기'(제2차 중동전쟁)를 해소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 '수에즈 위기'가 프랑스를 핵 무장으로 치닫게 했고, '프랑스 핵 폭탄의 아버지'로 불린 군 출신 지정학자 피에르 갈로와가 그 정당성을 설파한 책이 <공포의 균형-핵 시대를 위한 전략> 이었으니 참으로 공교롭다. 공포의>
■ 핵 무기의 전쟁 억지 효과에 초점을 맞추고 태어난 '공포의 균형'은 5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생명력이 여전한 말이다. 애초에는 핵 전력의 특성상 재래식 무기와 달리 상호 전력 균형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파멸적 피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전쟁 억지력을 발휘한다는 전략 이론이었다. 그것이 전력 불균형 상태에서도 공포의 정치심리학적 작용을 매개로 얼마든지 상대방의 공격 행위를 제약할 수 있다는 뜻으로 확대 해석돼 왔다. 미국이 벌여 온 '테러와의 전쟁'에 맞서서 알 카에다가 내세우는가 하면 중국ㆍ대만 관계에서도 언급될 정도다.
■ '공포의 균형'은 흔히 '다같이 권총을 차고 있으면 누구든 함부로 총을 빼지 못한다'는 이야기로 비유된다. 그러나 이는 공포의 균형이 얼마나 기반이 취약한지를 보여줄 뿐이다. 총기 소지가 국가 권력과의 '폭력의 균형'을 통해 민주주의를 뒷받침했는지 몰라도 흉포한 총기 범죄의 만연을 부른 미국이 좋은 반례다. 다같이 치명적 무기를 소지해도 그에 대한 공포는 사람마다 달라 소위 '깡'이 남다른 상대에게 제대로 작용하진 못한다. 무기가 아니라 소지자 서로가 확인 가능한 상대의 단호한 결의만이 공포의 균형을 퍼뜨릴 수 있다.
■ 현실은 오히려 공포의 불균형에 지배되기 쉽다. '깡'의 차이에 덧붙여 스스로의 손실에 대한 주관적 평가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안락에 젖어 '살을 주고 뼈를 베는' 선택조차 머뭇거리는 쪽의 맞은 편에는 상대의 손가락이라도 자르려고 목숨을 무릅쓰는 사람이 있다. 다행히 이런 반사적 태도도 반복적 행동 훈련으로 고칠 수 있다. 고도로 훈련된 병사는 타고난 용기가 아니더라도 몸을 던져 전투에 임한다. 개인의 안전이든 국가의 안보든 위협 요인에 최소한의 공포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천안함 참사'를 보며 문득 떠올랐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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