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계의 진부한 속설 하나. '스타플레이어는 명장이 되기 어렵다.' 스타플레이어는 현역시절 자신의 눈높이로 선수들을 보기 때문에 장점을 극대화하기보다 단점을 들추기 십상이라는 의미다.
유재학(47) 모비스 감독은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그러면서도 현역 최고의 명장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2004년부터 모비스 지휘봉을 잡고 있는 유 감독은 이번 시즌까지 재임 6년 중 4차례나 팀을 정규시즌 정상에 올렸다. 또 2006~07시즌과 2009~10시즌에는 플레이오프 챔피언까지 거머쥐면서 통합우승을 이뤘다.
부상 때문에 유니폼을 일찍 벗긴 했지만 유 감독은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포인트가드 중 한 명이었다. 선수시절 스타플레이어가 감독이 된 뒤로도 우승을 밥 먹듯 하니, 적어도 유 감독에게만은 '스타플레이어=명장' 공식이 성립한다.
▲지도철학은 평등과 겸손
유 감독이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것은 19년 전인 91년. 28세의 젊은 나이에 기아자동차에서 은퇴한 유 감독은 모교인 연세대 코치로 부임했다. 감독이 된 것은 11년 전인 99년으로 당시 만 36세였다. 36세라면 서장훈(전자랜드)과 같은 나이고, 프로농구 최고령 선수 이창수(41ㆍLG)보다는 5세나 어리다.
'어린 나이'에 프로팀 사령탑에 올랐으니 세상 무서운 줄 모를 법도 했지만 유 감독은 달랐다. 농구 좀 한다고 으스대는 선수는 가차없이 내쳤다. 또 기량은 떨어지지만 최선을 다하는 선수는 팍팍 밀어줬다. '코트의 황태자'로 불렸던 우지원(모비스)이 유 감독 부임 후 '마당쇠'로 변신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유능한 포인트가드였던 유 감독이 일찌감치 선수생활을 접은 '표면상'의 이유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 하지만 이면에는 팀 내에 보이지 않는 출신 학교간 파벌싸움도 크게 작용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유 감독의 지도자 철학은 평등과 겸손이다. 지난 11일 KCC와 챔프전 6차전 승리 후 유 감독은 "특정선수 한두 명이 잘해서 우승을 한 것은 아니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국내선수 위주로 우승을 해서 2007년 우승보다 더 기쁘다"며 감격을 이기지 못했다.
▲악바리이자 꾀돌이
유 감독은 서울 상명초등학교 3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다. 형들이 농구하는 모습에 반해 무작정 농구공을 잡았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유 감독은 손에서 공을 놓지 않았다. 유 감독을 지도했던 방열 전 경원대 교수와 최인선 전 기아 감독은 "유재학 같은 악바리는 못 봤다"고 했다.
유 감독은 공부도 잘했다. 중학교 때는 학급 반장을 맡았고, 성적도 상위권이었다. 기아 시절 유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김유택 오리온스 코치는 "허재의 현란한 패스는 관중을 즐겁게 했고, 유재학의 영리한 패스는 센터들을 행복하게 했다"고 말했다. 유 감독의 별명은 만화영화 <톰과 제리> 에서 제리 또는 만수(萬數). 만수는 경기를 운영하는 수가 만 가지는 된다는 뜻에서 붙여진 애칭이다. 톰과>
▲모비스의 법칙은 계속된다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에 빛나는 함지훈이 오는 19일 군 입대한다. 함지훈은 두말할 필요 없는 모비스의 기둥이다. 모비스의 전력 약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유 감독도 일정 부분 주위의 우려를 인정하다. 유 감독은 그러나 "함지훈이 없기 때문에 약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플레이 스타일에 변화를 주는 등 다시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달 말로 유 감독의 계약기간은 끝난다. 하지만 누구도 유 감독의 재계약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어떤 조건으로 계약하느냐가 관심일 뿐이다. "눈앞의 우승보다 장수감독이 되겠다"는 유재학 감독. 평등과 겸손의 원칙만 지켜진다면 '모비스의 법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최경호 기자 squeez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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