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올 3월엔 실종신고가 부쩍 늘었다. 경찰에 2,185건이 접수돼 지난해 같은 기간(1,638건)보다 33%나 증가했다. 부산 여중생(13) 납치살해 사건의 영향이 컸다는 게 경찰의 분석이다. 지난달 가족 품으로 돌아간 실종자도 2,137명이나 된다.
실종은 흔히 세 부류로 나뉜다. 범죄에 의한 실종, 자발적인 실종(가출), 장애 치매 등으로 인한 실종. 그 중 입에 풀칠하기 힘들어 핏줄을 실종으로 내몰아야 했다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만난 가족도 있었다. 경찰청 182센터(실종아동찾기센터)가 최근 찾아준 가족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1992년 이혼한 부모의 버림을 받아 대구의 한 고아원에 맡겨진 남매(당시 8, 6세). 하지만 이들은 원아들의 괴롭힘 등으로 적응을 하지 못해 무작정 서울로 갔다. 서울역 주변을 전전하다 경찰관의 눈에 띄어 다시 경기 평택의 관련시설에 맡겨졌다. 이후 남매는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흔들리지 않고 잘 자랐다.
지난해 2월 장기 실종아동들의 사진을 우연히 본 사내가 경찰에 신고를 했다. 남매의 큰 아버지였다. 그는 동생(남매의 부친)의 이름과 나이만 알뿐 연락처를 몰랐다. 경찰은 큰 아버지의 어렴풋한 기억의 편린들을 짜맞추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남매가 20년 가까이 밟아온 길을 추적하는데 1년 남짓 걸렸다. 경찰은 지난달 4일엔 남매를, 9일엔 아버지를 찾았다.
그리고 다음날 경기 안산시에 살던 남매는 경남지역의 병원에 입원해있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배를 타고 막일을 하느라 심신이 지친 아버지는 "찾아줘서 너무 고맙다"고 했다. 애틋한 서먹함이 묻어나는 18년만의 해후였다.
#평생 엄마 없이 자란 딸은 엄마가 보고 싶었다. 잊고 살았건만 결혼을 앞두자 핏줄이 당겼다. 고아원을 통해 얻은 이름과 나이로 엄마를 찾을 수 있는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경찰에 물었다. 경찰은 수소문 끝에 주소를 알아냈고, 엄마를 만나기 위해 며칠이나 집 앞에서 기다렸다.
엄마는 당황하고 놀랐다. 해외로 입양간 줄 안 핏덩어리가 주변에 살아있을 줄이야. 엄마는 27년 만에 들려온 딸의 부름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떳떳하지도, 넉넉하지도 못한 자신이 서글펐다. 딸의 결혼식은 차츰 다가오고 있다.
#79년 여동생에게 꾼 12만원을 갚지 못해 실종을 자처한 사내(56)도 있었다. 그의 부모는 장남이 돌아오지 않자 죽었다고 여기고 85년 그를 주민등록에서 지웠다. 평생 떠돌아 늙고 주린 사내는 지난해 말 기초생활수급 대상이 되는지 확인하러 갔다가 주민등록이 말소된 걸 알았다. 고민하던 사내는 올 1월 182센터에 전화를 했다. 경찰이 추적해보니 놀랍게도 노모(71)는 그가 가출할 당시 살던 마을에 홀로 남아있었다. 아버지는 노환으로, 남동생은 암으로 숨진 뒤였다. 모자(母子)는 31년 만에 만났다. 노모는 "아들이 무덤에서 살아왔다"고 기뻐했다. 아들은 "장남으로서 면목이 없어서 돌아오지 못했다"고 울었다.
신영숙(경감) 182센터장은 "범죄에 의한 실종도 간혹 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실종가족이 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죄스러움과 여전히 받쳐주지 않는 경제력 때문에 수십 년만의 상봉을 망설이는 가족도 있다고 했다. 그들을 위해 경찰은 지난해부터 가족지원팀을 운영하고 있다.
182센터는 센터장을 포함해 21명의 여경이 책임지고 있다. 5명씩 4교대로 24시간 내내 전화기를 지킨다. 실종신고가 많았던 지난달엔 1인당 매일 15.9건의 실종신고를 접수하고 처리했다.
센터 직원들은 모두 기혼이다. 가족을 잃어버린 엄마의 맘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기 위한 조치다. 정미란 경사는 "범죄와 연관되지 않은 실종아동 대부분이 조부모 가정 등 환경 탓이 커 늘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실종자 찾기 시스템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지난해엔 간단한 시스템 검색만으로 723명을 찾았다. DNA검색, 프로파일링(실종자 특성파악), 몽타주 배포, 고아원 등 관련시설 3,300곳의 일제수색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그러나 400여명은 여전히 실종상태(4월 현재)다. 센터 경찰관들은 "실종을 개인의 문제나 경찰만의 직무라고 여기면 안되고 사회전체 구성원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거리를 떠도는 치매노인, 건물에 웅크린 장애인, 보호자 없이 맴도는 아이들을 조금만 유심히 봐달라는 것이다.
센터 경찰관들은 모두 잠든 새벽 2, 3시에 누군가를 가족 품으로 돌려보낼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실종가족들의 항의와 불만, 욕설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그보다 속상한 건 사회의 무관심이다.
조촐한 센터 사무실 벽면엔 부모가 애타게 찾는 아이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10년 넘게 사라진 아이들의 당시 사진 곁엔 컴퓨터로 재현한 최근 추정 모습까지 담겨있다. 센터 직원들은 전화기 앞에서 그들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보전화는 국번 없이 182다.
고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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