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서 '오석산' 거래 기록된 목간·목제 칠기 등 출토
백제 사비시대(563~660)에 도교에서 불로장생의 선약(仙藥)으로 여긴 오석산(五石散)을 복용했음을 뒷받침하는 목간(木簡)이 부여에서 발굴됐다.
매장문화재 발굴조사기관인 동방문화재연구원(원장 김성구)은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사비119안전센터 신축 부지를 발굴조사한 결과 '五石○十斤'(○는 미판독)으로 읽을 수 있는 목간 1점과 목제 신발 1쌍, 목제 칠기, 도가니편 등이 출토됐다고 13일 밝혔다.
목간의 묵서(墨書)를 판독한 서예사 전문가 손환일 경기대 연구교수와 이용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발굴단에서 미판독으로 처리한 '○' 글자는 '九'로 판단되며 마지막 '斤'은 무게 단위임에 틀림없다"면서 "따라서 이 묵서는 '오석 90근'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목간은 머리 부분에 홈이 패여 있는 물품 꼬리표 목간이다.
'오석'은 다섯 가지 광물질을 빻아 만든 가루약으로 '오석산'이라고도 한다. 도교에서 최고의 선약으로 여겼으며 중국 위진남북조시대에 복용이 유행했다. 마약의 일종으로, 복용하면 열이 나서 차가운 음식만 먹어야 하기 때문에 한식산(漢食散)이라고도 불렸다.
손 교수는 "오석을 구성하는 독성이 강한 광물질인 단사(丹砂ㆍ황화수은), 웅황(雄黃), 백반(白礬), 증청(曾靑), 자석(磁石) 가운데 단사가 환각 작용을 일으킨다"면서 "단사는 대륙에서만 나던 것"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90근이라면 현대의 도량형으로 18kg으로 수만 회에 걸쳐 복용할 수 있는 막대한 분량"이라며 "대륙에서 유행했던 불로장생 사상이 백제에까지 널리 퍼졌음을 말해준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사는 "중국 육조시대에는 귀족들이 오석산과 술을 복용한 뒤 기분이 고조된 상태에서 청담사상을 논했다"면서 "백제의 관청이 있던 장소에서 이 목간이 출토된 것으로 미뤄 국가가 오석산의 공급을 통제할 만큼 널리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백제에서 도교 사상이 유행한 것은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백제용봉대향로, 보물로 지정된 벽돌인 산수문전 등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이번에 함께 발견된 목제 칠기는 무령왕릉 발굴품 이래 백제 지역에서 출토된 것 중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됐다.
남경욱 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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