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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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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혀

입력
2010.04.13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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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 붉은 말떼를 몰고 달려가는, 맨홀덮개보다 넓은 회전판을 당신 혓바닥이라고 하겠습니다

편자도 없는 발굽으로 허공을 긁으며 달아나는 말, 말을 쫓아 달려가는 이 혓바닥은 별들이 태어나는 우주의 은하원반과 달라서

구유 같은 내 입 속에서는 아직 어떤 별도 태어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소용돌이치는 은하, 갈기털을 뻗쳐 혓바닥안장 위로 가볍게 나를 안아 올립니다

이곳은 복숭아밭이 있던 자리

도원(桃園)에서 중원(中原)까지 우리 주마간산 주유사방 말 달려도 좋겠습니다

덮개 아래 허구렁처럼 나는 혀 아래 블랙홀을 숨겼습니다

바람으로 재갈 물린 목마처럼 나는 소리 없이 울 수 있습니다

밤의 공원에는 밤 없이 기다리는 열두 마리의, 아니 열 마리의 적토마

한 말은 도망갔고 한 말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 해가 질 무렵의 놀이공원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낮 동안 놀이공원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은 이제 빠져나가기 시작하죠. 놀이기구의 대기줄도 점점 줄어들구요. 해 질 무렵의 놀이공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놀이기구는 회전목마죠. 반짝이는 그 전구들이며, 또 꿈결 같은 멜로디며. 이제 그 목마들을 탈 만한 아이들은 놀이공원에 많이 남아 있지 않아요. 그 아이들은 차 뒷좌석에서 휴지처럼 구겨져 잠들어 있을 테니까. 목마들은 푸른 어스름 속에서 혼자서 돌지요. 이제는 더 이상 뜨겁지 않은, 마음이 떠나버린 연인과의 키스가 꼭 그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지요. 그 순간에도 목마들은 열심히 어스름 속에서 즐거이 돌고 있었지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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